2013년 9월 1일 일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4)-Key Proposition

여러분 안녕하세요. 태만하기 이를 데 없군요 제가 생각해도... 원래 방학 기간 내로 블로그에 연재를 끝내려 했으나 생업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법학적성시험과 텝스를 봤습니다) 하면서 계속 미뤘네요. 그래도 봐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은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핵심 명제라고 할 만한 것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도 이전의 세계관과 같이 기존의 신고전학파 주류경제학과는 많이 다릅니다.

1) The economy is a historical process.(시간은 비가역적이다.)
-이 가정은 계량경제학적 방법론하고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량경제학은 통계적 방법에 의거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어진 독립변수가 같다면 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즉 함수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러한 시간 개념을 거부합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 고스란히 다시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신고전학파는 Logical time 즉, 논리적 시간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했을 때, 원인이 같다면 결과도 같겠지요.

2) We are in an uncertain world, and here expectations have significant impact.
-불확실성이란 케인즈의 경제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 세계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기대는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신고전학파의 합리적 기대와는 다른 종류의 기대입니다. 일종의 '관행(conven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관행에 따라 어느 정도 미래까지 행동하게 됩니다.

3) Institutions are important: megacorp, trade unions, the central government, the banking system, the international environment, etc.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제도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의 기업은 단순히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시장에서 독과점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화폐도 신고전학파의 개념처럼 거래의 매개가 아니라 화폐라는 일종의 제도로서 보면서 접근합니다. 때문에 화폐는 가치 저장수단으로서 기능하며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도라고 봅니다.

4)Capitalism is a class-divided society.
-마르크시스트들이 좋아할 명제입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기존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경제주체들을 동질적으로(homogeneously) 보는 관점을 거부합니다. 엄연히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소비-저축 이론을 다룰 때 각 계급의 소비성향과 저축성향을 다르게 설정해 줌으로써 결론에 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5) Economic agents commit themselves to contract denominated in money.
-뭔가 부연 설명하기에 양이 많은 것 같진 않습니다만, 경제 주체들은 거래를 함에 있어서 화폐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6) Labour is different from peanuts.
-네 노동은 당연히 땅콩과는 다릅니다. 같을 수가 있나요. 하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이나 땅콩이나 모두 똑같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입니다. 노동력의 가격은 임금이고 땅콩의 가격은 상품 가격으로서 표시될 뿐입니다.(마르크시스트들의 노동과 노동력의 차이에 대한 구분은 알고 있습니다만 섞어 쓰겠습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 둘을 같은 층위에서 분석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사실 이 주제는 저번 학기 내내 제 머릿속에서 떠돌았던 생각입니다. 노사관계론에서 경제사회학적 관점과 제도학파적 관점에서 노동 시장과 노사관계에 대해 다룬 이후로 노동은 분명히 다른 commodity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도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노사관계론에서는 노동이 특수한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환경에서 거래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고전학파적 한계주의 이론으로 접근하기 힘들다고 봅니다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를 재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이에 대해 하단에 상술하겠습니다.

노동시장의 작동에 대해서 신고전학파는 한계이론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즉 한계생산물의 시장가치가 노동자가 받아야할 임금이라는 뜻이지요. 쉽게 말하면 어떠한 물건을 생산했을 때 그 물건이 시장에서 평가되고 그 평가된 가격이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 아래서는 생산과 분배 이론이 통합됩니다. 다시 말해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과정과 판매 과정에서 정해지고 그에 따라 임금을 주기만 하면 되므로 별도의 분배이론을 발전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윤리학적 고찰을 통해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주님의 것은 주님에게'를 따질 껀수가 안 나오는 것이지요. 때문에 경제학에서 한계주의 학파 등장 이후 제 생각으로는 분배 정의에 대한 논의가 한참 후퇴했다고 봅니다. 윤리학적 요소도 많이 제거 되었고요.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한계주의의 등장 배경은 자세하게 서술할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재화의 희소성' 개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재화가 희소하니 막 한계가 오고 그에 따라 아껴 써야한다고 이해하시면 됩...(경제학도들은 알아서 걸러 들어 주세요) 여튼 노동이나 자본, 토지 모두 희소하니 주류 경제학(한계주의 경제학)에서는 막 아껴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희소성은 토지에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고 따라서 한계주의적 분석은 토지만 해당된다고 봅니다. 실제로 고전학파들이 한계적 방법론을 최초로 사용할 때는 토지에만 국한 되었습니다. 토지는 아시다시피 그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땅 좁은 나라는 한국 같이 토지의 가격인 지대가 터무니 없이 비쌀 수도 있습니다.(그보다는 역시 재테크 때문에...) 여기서 토지란 단순히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생할 수 없는 거의 모든 천연자원을 토지로 보통 퉁쳐서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동과 자본은 재생할 수 있을까요? 네 재생이 됩니다. 노동의 재생(혹은 재생산)은 애를 막 낳아서...(진짜 맞습니다) 하고 자본의 재생산은 자본이 투하 되어 자본재를 생산하고 그 자본재가 다시 자본을 축적하고 이러면서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재생산은 그 규모가 더 커지는 확대재생산과 그 반대인 축소재생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과 자본의 재생산성 때문에 희소성이란 개념에 기반한 한계주의적 분석은 노동과 자본의 분석에 쓰일 수 없다는 것이 포스트 케인지언의 입장입니다. 반면 제도주의적, 경제사회학적 노사관계론에서는 노동의 가격인 임금이 워낙 다른 많은 요소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에 신고전학파의 한계주의적 분석을 거부하는 것이고요.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서술하겠습니다.

저의 난잡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부지런히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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