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 월요일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


I.     서론-파레토의 생애와 학문

Finer는 그의 책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1966)에서 파레토를고양이와 같이 홀로 걷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파레토는 마치 도도한 고양이같이 귀족적인 속성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는 사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의 날 선 비판은 누구도 달가워할 리 없었다. 파레토는 이러한 고고한 고립 상태에서 그의 뛰어난 경제학적, 사회학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그의 경제학과 사회학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그의 사상과 학문적 발전의 맥락에 대해 짚고 넘어갈 것이다.

A.   파레토의 생애와 학문적 발전 과정

파레토는 이탈리아 귀족가문의 후손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1848 7 15일 탄생하였다. 파레토의 아버지(Marchese Rafaello Pareto)는 이탈리아에서 열렬한 공화주의자로 활동하였으며 관련된 사건으로 인하여 이탈리아를 벗어나 파리에 머물던 중 파레토를 낳았다. 파레토의 아버지는 공학자였고 파레토는 아버지의 직업을 그대로 따라 Turin의 공과대학(polytechnic)에서 5년간 civil engineering을 배우게 된다. 공학도로서,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젊은 시절부터 갖게 된 것은 순수경제학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1]공학자로서 학업을 끝낸 파레토는 철도회사에 취직했고 얼마 안가 철강회사의 경영인이 되었다. 젊은 시절의 파레토는 그의 학문적 연구 성과에서 나타나는 귀족주의적 성격과는 달리 열렬한 공화주의자이며 자유주의자였으며 민주주의자였다. 그는 자유 무역을 옹호하고 군비감축을 지지하였으며 당시 이탈리아의 상류층들을 이탈리아 빈민의 피를 빨아먹는 자들이라고 맹비난 했다.[2] 1876년 좌파가 집권하여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이에 대해서도 파레토는 열성적으로 반대하였다. 그 이후 파레토는 철강회사의 경영인직()을 버리고 평론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이후 평론가로서 활동하면서 그는 그의 자유주의적 입장을 계속하여 견지(堅持)하였고, 많은 수의 망명한 사회주의자들을 보호하고 드레퓌스 사건에서 반-반유대주의적 입장에 서서 드레퓌스를 옹호하였다.[3] 이후 그는 스위스 로잔 대학의 Walras Chair를 계승하여 경제학 교수가 되었고 은퇴 후에는 칩거 하며 사회학을 연구하며 1916년까지는 사회학 강의를 하며 지냈다.
한편 파레토는 1900년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4] 그는 당시 드레퓌스 사건에서 승리한 세력이 그 승리에 도취되어 마음대로 권한을 남용하고 이탈리아에서 세를 얻은 노조와 사회주의자들도 자신들의 특권을 남용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의 우수한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을 보며 사람의 행동이 이성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감정에 따라 행동한 후 논리적인 양 합리화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이후 파레토의 사회학적 논의의 기반이 된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바꾼 후 파레토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부패와 무능만을 목격했다. 이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고전을 탐구했던 그에게는 강력한 질서를 추구했던 로마 공화정과 비교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파레토가 로마 집정관처럼 독재적 권한을 가진, 질서의 수호자를 원했을 것이라고 슘페터는 추측한다.[5] 파레토는 실제로 무솔리니의 집권과 질서 회복에 대해 승인한 전력이 있지만 파시즘은 거부하였다.[6]

B.    당시의 시대상과 파레토의 학문적 경향

당시의 사회는 Liberal-Democracy의 번창과 함께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7] 19세기 중반, 서구 사회는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과 함께 사회가 영원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었으며 과학에서는 positivism의 입장으로, 그리고 학문에서는 전반적으로 rationalism의 입장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의 힘은 여전히 강했지만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교황의 영향력은 급속히 쇠락하였고 이와는 반대로 인본주의(humanitarianism)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인간의 완벽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은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도 나타났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인류의 영속적 발전을 전망했고 마르크스는 계급 갈등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인간성의 실현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오면서 세태는 급변했다. 이전의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병행하여 발전해 오던 자유시장경제와 자유 무역은 노동자 계급과 지배 계급 모두의 이해관계에 의해 보호무역과 복지 시스템으로 변형되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실증주의적 관점이 쇠퇴하였으며 경험을 모아 법칙을 도출한다는 믿음은 기울고 있었다. 이런 사조는 irrationalism이나 anti-rationalism이라고 칭해졌으나 그보다는 주관주의(subjectivism)라고 지칭하는 것이 그 특징을 더 잘 표현한다.[8] , 그 동안 자연과학과 경제학, 사회학에서 흔히 law라고 지칭했던 것들이 과연 객관적으로, 관찰자와 독립하여 성립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파레토는 최초에 실증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그의 사회과학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도 주관주의를 옹호하게 되었고 당대의 지적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파레토는 현실 문제에 대한 열정으로 그의 학문적 경력을 시작하여 경제학을 거쳐 사회에 대한 더 넒은 설명을 위해 사회학으로 나아갔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경제학과 사회학 모두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파레토가 구상했듯이 사회학과 경제학을 통합하여 사회 전체에 대해 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본론에서는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적 성과에 대해 간략히 살펴 보고 경제학과 사회학이 어떻게 구분되어 후대로 이어져 내려왔는지, 그리고 사회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위해서는 왜 같이 연구 되어야 하는지를 다룰 것이다.


II.    본론

1.    파레토의 학문체계에 있어서의 경제학과 사회학의 구분

Pareto의 학문 구분

파레토는 스스로 경제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이 불완전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경제학 연구에 몰두한 결과, 경제학이 수단으로는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려 했던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데, 그가 경제학에 대한 환멸을 일으키게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됐다. 첫째, 경제학 모형은 사회체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변수들을 상수로 가정한다는 점과 둘째, 인간동기의 복합성을 간과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이다.[9]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파레토는 사회학의 영역으로 연구범위를 넓혔다. 그는 인간사회의 근본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위해 특히 인간과 현상의 상호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10]

Logical Action vs. Non-logical Action

파레토는 사회학이 경제학과 함께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파레토는 인간행위가 합리적(logical)인 경우보다 비합리적(non-logical)인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경제학이 희소 자원의 획득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위를 다룬다면, 사회학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1]

사회학으로 연구방향을 바꾸면서 파레토는 인간행위를 분류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세웠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행위는 본능적 행위, 합리적 행위, 비합리적 행위로 나누어진다.[12] 본능적인 행위는 말그대로 본능을 따르는 것으로 행위의 주체자는 그 행동을 왜 하는지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에, 합리적 행위와 비합리적 행위는 행위자가 자신에 행동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합리적 행위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행위를 지칭한다.

     특정 행위와 그 행위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사이에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이론에 근거한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행위자는 이 관계를 기반으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했어야 하고, 사전에 해당 이론을 모르더라도 이 관계는 성립해야 한다.
     행위자가 목표한 바가 그 행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수단과 목표 사이의 논리적 결합은 행위를 수행하는 주체뿐만 아니라 훨씬 폭넓은 지식을 지닌 제 3자의 관점에서도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13]

위 조건을 만족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행동들이다. , 합리적 행동이란 목표에 적합한 수단을 사용하고 목표와 수단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는,” 그리고 그 논리가 주관적인 관점과 객관적인 입장에서도 논리적인 것을 일컫는다.[14]

그 외의 모든 행동은 비합리적이다. 비합리적인 행동의 원인은 옳지 않은 연역적 추론이나, 더 보편적으로 인간의 기본감정이다.[15]인간은 우선 목표하는 바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해 결정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 혹은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고 나서야 그 행동을 왜 하였는지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말하는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후에 형성된 논리적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16] 

파레토는 그가 사회학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할 때 사회학과 경제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제의 합리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분류의 방법은 파레토의 제자들과 후세의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예를 들면, Paul Samuelson학계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주제의 합리성에 기반해 경제학과 사회학을 구분한다라고 했으며, 이러한 구분은 파레토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17]

그러나 명시해야 할 것은 파레토식의 사회학과 경제학 구분 방법의 계승이 온전히 옳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였으나 사회학자로 전향한 Talcott Parsons에 당대의 학자들에게 수용되었지만 잘못 전해졌다고 판단된다. Parsons의 저서인 『사회적 행위의 구조』[18] 에 언급된 바와 달리, 파레토는 오히려 이러한 사회학에서 경제학을 구분하는 방법을 포기하였다. 그는 경제학자들 사이에 알려지던 통념인 경제적 변수가 기타 사회적 변수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공감하였다고진술했다.[19]그는4권으로 구성된 『일반사회학논고』를 통해 사회학적 연구를 마치고 나서야 그의 오류를 발견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로 하여금 경제 위기의 특정 이론에서 사회 현상의 일반적 이론에 이르는 짧은 단계에 다다르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단지 합리적과 비합리적과 구분만을 경제학과 사회학 정의에 척도로 사용하는 것과 이를 통하여 두 학문을 분리하는 것은 파레토와 그의 연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한다.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 연구를 상호보완적으로 본다면 그의 체계를 더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고, 나아가 더 깊게 파고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그의 경제학과 사회학 체계이다. 그의 개념이 항상 일관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하다.이는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적 성과를 살펴 본 뒤 다시 논할 것이다.


2.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

A.   경제학자로서의 파레토

경제학자로서의 파레토가 경제학에 남긴 가장 큰 공헌은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일 것으로 생각한다. 파레토 최적은 경제학에서 효율성의 측정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고 미시 경제학과 거시 경제학을 가리지 않고 많은 경제 모형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파레토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업적인 파레토 최적과 함께 파레토는현대 경제학 발전에 있어서 효용이론 등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파레토의 경제학에 대한 공헌을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a.     효용이론

J. Bentham의 공리주의에서는 즐거움(pleasure)에서 고통(pain)을 뺀 것을 최대화(maximization)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는 효용의 측정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했고 효용이 측정 가능하다면 효용의 기수적(cardinal) 표현과 개인 간의 비교도 가능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파레토는 이전까지 경제학에서 사용되던 효용 개념 중 기수적 효용 없이도 미시경제학적 논의가 가능함을 발견하였다.[20] 파레토는 피셔의 연구(Mathematical Investigations into the Theory of Value and Price, 1892)의 영향을 받아 측정 가능한 효용(measurable utility) , 기수적 효용을 표기하고 서수적 효용 지표를 도입하였다.[21] 파레토가 서수적 효용 개념을 미시경제학에 있어 도입한 도구는 에지워스(F. Edgeworth)의 무차별 곡선이었으나, 에지워스가 무차별 곡선을 기수적 효용에서 도출해낸 것과는 달리 파레토는 무차별 곡선에서 기수적 효용의 요소를 제거하고 경쟁의 균형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22]

기수적 효용을 제거함과 동시에 파레토는 기존의 효용 관념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기존에 사용되어 오던 효용(utility)의 개념과는 다른, ophelimity를 도입하였다. 이는 파레토의 경제학 연구 목적을 위해 파레토 자신이 고안한 개념이다. 경제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기존의 효용 개념은 파레토에게 있어서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었다. 따라서 이는 엄밀한 과학적 연구에 사용되기에는 부적합했다.[23] Utility는 그 뜻하는 바가 개인적인 차원도, 공동체적인 차원도, 사회적인 차원도 될 수 있어서 정확히 한 개인의 만족을 측정하기에는 부적합한 개념이었다.[24]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만족을 나타내는 ophelimity의 개념이 필요했다. 파레토는 이를 경제학이 물리학과 화학과 비견할 수 있는 엄밀성을 갖춰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레토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25]

첫째로 우리는 ophelimity에 대한 연구를 다양한 형태의 utility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그런 뒤에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인간 그 자체로 돌려야 한다. 인간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인간의 속성을 벗겨내고 격정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떨쳐 내어 인간을 오직 ophelimity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분자로 만들어야 한다.”(Pareto 1949b, pp.442-43)
파레토는 이 분자들이 Homo Economicus이며, 이들 간의 역학(力學)을 연구하는 것이 pure economics라 보았다.

b.     후생경제학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파레토의 경제학에 대한 가장 큰 공헌은 후생경제학에 있다.[26] 파레토 최적은 현재에도 후생경제학에 있어서 정책 판단의 효율성 기준으로 이용되고 있다. 파레토 이전에도 사회 전체의 복지 혹은 후생에 대해서 논하려던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Bentham의 공리주의도 이러한 맥락에 있었고 파레토와 근접한 시대에는 에지워스와 같은 경제학자들도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사회전체에 대한 공공복지의 개념은 파레토 이전의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도 그 개념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았을 뿐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27] 하지만 힉스가 언급했듯이[28]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의 개념은 이전의 후생 개념들에 비해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공리주의의 전제였던 개인의 효용함수가 모두 동일해야 한다는 가정을 회피하여 더욱 다양한, 무한에 가까운 최적의 분배상태들을 가능하게 하였다.[29][30] 파레토 최적의 개념은 또한 이전의 공리주의적 개념과는 달리 윤리적인 중립성을 담보로 한다.[31] 아무리 불평등한 결과라도 파레토 최적일 수 있고 평등한 분배 상태도 파레토 최적의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 일단 파레토 최적을 달성한 후 그 이후의 문제는 순수경제학의 연구 범위를 넘어서 경제 외적인 조건 즉, 윤리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할 일이었다.[32]

파레토의 후생경제학에 대한 또 하나의 공헌은 자유로운 경쟁과 교환(free competition and exchange)의 결과가 사회 전체의 후생 극대화를 가져오며 이 상태에서 파레토 최적이 달성되어 효율성 기준을 충족한다는 파레토 정리 혹은 후생 경제학의 제 1 정리를 정립한 것이다. 이는 파레토의 생산에 관한 이론과 연계되어 있다. 파레토의 스승인 왈라스는 생산과 관련하여 고정된 생산계수(coefficient of production-산출량의 단위당 투입량)를 가정하였으나 왈라스가 후에 가변적 생산계수를 채택하였고 파레토도 이에 따라 가변적 생산계수를 자신의 이론에 도입하였다.[33] 파레토는 왈라스의 결론에서 더 나아가서 자유로운 경쟁과 교환의 과정을 통해서 결정되는 생산계수는 가장 적은 희생을 통해 가장 많은 효용을 얻어내는 것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생산자는 혹여 라도 노동자들의 지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생산계수를 변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소득 재분배는 일단 파레토 최적을 만족시키는 생산계수 하에서 생산된 생산물을 시민들(citizens) 간에 이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34] 그러나 파레토는 이 모든 논의를 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누리는 효용 혹은 ophelimity의 크기를 결코 기수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에 사람들의 이득과 손실을 표준가치척도재(numeraire)로 표시하였다.[35] 슘페터는 이런 일련의 파레토의 경제학 연구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파레토가 많은 부분을 선대 혹은 당대의 연구 성과들을 명시적으로 확립하거나 위험한 위치에서 안전한 곳으로 밀어내었다고 평했다. 슘페터는 파레토의 ophelimity개념이나 서수적 효용의 개념 그리고 표준가치척도재 등의 개념이 한계효용이론과 공리주의를 타파하려는 파레토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그것은 파레토의 착각이었을 뿐이라며 자신의 책에서 논평하고 있다.[36]

c.     일반균형이론

파레토의 일반균형이론은 Walras Chair를 이어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독창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왈라스의 이론을 더욱 명확하게 한 데에 그 가치가 있다. 그는 초기에 일반균형이론의 창시자인 왈라스에 대해서 큰 존경을 보냈고 그의 이론을 더욱 명료하고 일반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데 성공하였다.[37]파레토는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을 명료하게 하는 한편 일반균형이론 체계에서 생산이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끌어 올려 균형이론의 진일보에 기여하였다. 왈라스의 균형체계에 소비자 이론에서의 무차별곡선과 같이 등량곡선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등량곡선도 무차별곡선과 같이 에지워스 상자(Edgeworth’s Box)에 위치할 수 있었고, 횡축과 종축은 각각 노동 부존량과 자본 부존량을 나타냈다. 이들 중 효율적인 생산관계의 집합을 계약곡선으로 옮겨서 이를 생산요소 공간에서 상품 공간으로 옮기면 생산가능곡선을 그릴 수 있고 이 곡선 위의 한 점을 부존으로 하여 다시 소비 이론의 에지워스 상자를 그려 일반균형을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38]

d.     기타 경제학적 기여[39]

파레토는 위에서 언급한, 상대적으로 중요한 경제학적 성과 이외에도 다른 경제학적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가 언급한 분야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지대이론
-파레토는 지대와 준지대 이론을 일반화 시켰으며 지대는 잉여보수에서 온다고 보았다. 잉여보수는 어떠한 생산요소에게 주어지는 총 보수에서 그 생산요소의 기회비용을 제한 것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다. 파레토는 지대가 생산부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알았지만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기업론과 불완전경쟁
-파레토는 왈라스 체계에서 존재하던 완전경쟁체제 이외에도 독점 시장에 대한 분석도 시도하였다. 이러한 분석 과정에서 그는 평균비용함수와 한계비용함수 등에 관심을 가졌으며 독점기업은 이윤최대화의 관점에서, 경쟁기업은 비용최소화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또한 당대와 그 이후에 한동안 나타났던 시장에 존재하는 기업의 수의 관점이 아닌, “가격의 관점에서 시장 형태를 분석하였다. , 기업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순수경쟁과 독점이 구분된다고 보았고 이는 시대를 앞서간 분석이었다.
     경제위기와 변동
-파레토의 경기변동이론은 기본적으로 순수경제이론의 영역이 아니었으며 동태적인 것으로 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주제는 이 글의 후반부의 사회적 경제학 혹은 경제적 사회학(sociological economics)에서 살펴볼 것이다.
     국제무역이론
-국제무역이론에서 파레토는 평론가 시절부터 그의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로 인해 줄곧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왔다. 그는 일반균형이론을 국제무역에 도입하여 분석하였으며 이에 따르면 보호무역주의는 파레토 최적을 보장하는 생산계수의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후생 증대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보호무역이 독점의 경우나 유치산업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전체주의 경제체제
-전체주의, 다시 말하자면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자본주의의 경쟁과 똑 같은 파레토 최적의 생산계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파레토는 사회주의도 이점을 가질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실제로 소비에트 연방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계획 입안자들은 마르크스의 이론보다 파레토의 이론이 정책수립에 더욱 유용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파레토는 비록 그 자신이 스스로 고안하거나 창조하여 경제학 이론의 새 지평을 여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선대(先代) 경제학자들의 유산을 이어 받아 일반화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후대(後代) 경제학자들이 딛고 올라 설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 주었다. 특히 일반균형이론과 후생경제학, 그리고 한계효용 이론에서의 기수적 효용으로부터 서수적 효용을 거쳐 현시선호(revealed preference)로의 발전을 이끌어 내었다고 할 수 있다.[40] 그러나 파레토의 경제학은 합리적(logical) 행위자로의 경제적 인간(homo oeconomicus)를 상정한 순수경제학을 넘어 경제사회학 또는 사회경제학이라고 불릴 만한, 인간의 비합리적 행위를 상정하는 경제학까지 확장된다. 이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B.    사회학자로서의 파레토

파레토의 사회학 체계는 그의 대표작 『일반사회학논고』를 통해 알 수 있다. 4권으로 이루어진 『논고』의 첫 세권은 사회학의 기본개념과 원리를 확립하고 있고, 마지막 제4권은 앞서 설명한 기본을 근간으로 사회의 일반적 행태를 논한다. 여기에서는 『논고』의 내용을 구성순서를 따라 파레토의 사회학 체계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1

파레토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행위의 대부분은 비합리적이며 논리보다는 감상(sentiments)’에 의해 결정된다. 파레토는감상에 대한 직접적인 정의는 내리지 않았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 기저의 가치정향(value-attitude)으로 해석할 수 있다.[41] 감상은 가치관과 생각을 형상화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어떤 감상 혹은 가치가 기저에서 더 지배적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이 결정된다. 감상의 예로 집단유지와 결합을 들 수 있는데, 이 둘 중 집단유지의 감상이 더 지배적이라면 그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추구한다.[42] 만약 결합의 감상이 더 지배적이라면 혁신적인 가치관을 가질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 감상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도 존재하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한다.[43]

2

파레토 체계의 감상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인간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44] 따라서 이를 가늠하기 위해 파레토는잔기’(residu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잔기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서 비롯되는 행동인데, 동시에 감상을 드러내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감상은 본능을 얼만큼 표출할지에 대한 한도를 정하는데, 잔기는 결과적으로 현시화된 행동을 일컫는다.[45]

파레토는 잔기가 나타내는 인간의 본능, 혹은 가치정향을 아래 6개의 분류(classes)로 구분했다.

1. 파레토의 여섯 가지 본능[46]
분류
본능
정의
I
결합
재능 있는 꾀, 교활함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

II
집단유지
확립된 방식에 대한 완고한 집착과 전통에 대한 옹호

III
활동성
감정을 표현하거나 행동하려는 욕구

IV
사회성
협력과 용인에 대한 욕구

V
통합
물질적인 자기이해와 지위, 자기정체성에 대한 욕구

VI
()
성적 만족에 대한 충동


감상, 잔기와 본능에 대해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파레토가 정의하는 감상은 가변적인 반면에 본능은 불변한다는 것이다.[47]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이 감상은 본능을 얼만큼 드러낼지에 대한 한도를 정하기에 어떤 사람의 행동이 변했다면, 그것은 감상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48]
또한 파레토는 위 테이블에 명시된 개념을 바탕으로 행동을 분류했으며 이를 기준을 배합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성향을 분류했다.

이와 관련하여 파레토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첫째, 사회를 단위로 평가했을 때, 각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감상은 다른 사회에서 나타나는 감상과 종종 다르다는 점, 둘째, 개인의 성격은 그 사람의 본능을 형상화하는 것으로서 감상의 유형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셋째, 결합과 집단유지는 그가 밝힌 잔기 중 가장 중요한 잔기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사회체계의 동학이 결합과 집단유지라는 감상의 구성비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49] , 인간의 잠재적 행위는 기본적으로 본능을 따라가는데, 그 행위가 나타나기 전에 감상(가치관)에 의해 제한된다. 결과적으로 행동에는 감상으로 인해 조정된 본능적 충동이 반영된다. 마지막으로, 잔기는 사회체계의 동학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추가적으로, 위 테이블에서 분류한 본능 중에 self-interest, 즉 개인적인 이익추구에 대한 본능은 배제되어 있는데 이는 파레토가 self-interest와 관련된 행위는 종종 개인의 이익추구라는 뚜렷한 목적을 기반에 두고 이루어지기에 합리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50] 이런 합리적인 개인의 이익추구를 파레토는interest라는 개별적 개념 하에 두었으며, 합리적이지 못한 이익추구는 Class V 로 분류하였다.[51]

마지막으로, 감상을 표출하는 모든 행위를 잔기라고 할 수는 없다. 위에 설명된 잔기는 잔기의 속성에 대한 정의인데, 잔기의 일차적인 정의는 이론이나 신념체계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일종의 상수(constant)이다. 이 조건을 충족했을 때 우리는 특정 행위를 잔기라고 부를 수 있다.[52]

3

3권에서 파레토는 파생체의 개념을 소개한다. 파생체란, 이론 혹은 신념체계에서 나타나는 잔기에 대한 추론을 일컫는데, 잔기에서 파생(derive)된다는 의미에서 파생체(derivation)라 명명(命名)되었다. 인간행위가 대부분 비합리적이며 현존하는 이론과 신념체계가 인간의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파레토에게 파생체 역시 비합리적인 인간행위를 합리화하려는 허구에 불과했다. 또한, 파생체는 언제든지 인위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기에 가변적이었으며, 여러 학문의 이론체계 또한 파생체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53]

4
          
파레토는 사회를 상호의존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체계로 보아 체계의 한 부분에만이라도 충격이 가해진다면 그것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의 다양한 현상이 사회의 한 요소의 변화에서 시작해 그것이 다른 요소와 갖는 상호의존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는데, 따라서 각 현상에 대한 각각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54]파레토는 이런 가정에 입각해 사회요소들간의 상호의존성이 사회적 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고자 했으며, 나아가 이 사회적 변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유형을 갖는지에 대해 탐구하였다. 파레토는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끊임없이 변동하고 따라서 자신만의 순환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순환에선 나쁜 시기와 좋은 시기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사회의 흐름을 결정하는 세가지의 순환은 경기순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간의 순환,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력의 집중과 분산간의 순환이다. [55]파레토는 각 순환에 내제된 동학과 이 세 순환사이의 연계성을 찾으려 했으나 그 논의는 일관성이 없었다. 다만, 그가 궁극적으로 내리려고 했던 결론은 사회의 전반적인 감상이 사회순환의 원인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3.    파레토 사회학과 경제학의 통합

a.     파레토 체계 내의 경제학-사회학의 상호보완적 성격

파레토의 연구는 현재 경제학과 사회학으로 구분되어서 전승되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주로 파레토의 순수경제학 연구 성과를 이어 받아 미시경제학에서 큰 진전을 보았고 사회학에는 사회학자로서의 파레토의 엘리트 순환이론 등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파레토의 인생과 저작을 살펴 보면 파레토는 단지 경제학자로서 혹은 사회학자로서만 남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회과학이 사회를 분석함에 있어서 훨씬 다양한 도구를 필요로 함을 인식하고 있었다.[56]파레토에게 있어서 사회학과 경제학은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파레토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사람의 행동은 전혀 논리적(logical)하지 않으며 따라서 논리적 인간(homo economicus)을 다루는 순수경제학으로는 인간의 비논리적인 부분에서 초래되는 경제의 동태적인 모습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57] 파레토는 균형(equilibrium)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그 범위를 경제적인 균형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대시켜서 사회적 균형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과정에서 파레토는 순수경제학의 일반균형에서 보여주었던, 역학(mechanics)적 측면보다는 생물학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파레토의 경제학적 성과는 Neo-Classical의 정학(statics)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초점은 정학이 아닌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에 가까웠다.[58]

파레토는 일단 경제학(political economics)도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위의 파레토의 경제학에서 다룬 부분은 그의 경제학 체계의 일부인 순수경제학이었고 그는 현실에 실제로 적용 가능한 응용경제학(applied economics)을 순수경제학과 구분하였다. 응용경제학은 구체적인 사회 현상들을 분석하는데 더 적합한 것이었다.[59] 이러한 체계에 파레토는 사회학을 추가하였다. 사실 그는 초기 저작에서 사회학에 대하여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60] 그러나 그의 후기 저작들에서 사회학은 상당히 고평가 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인간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경제학과 다른 모든 사회과학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61] 파레토의 학문 체계에서 그 위상이 높아진 사회학은 경제학과 함께 사회를 분석하는 틀로 자리 잡았고 경제학과 사회학의 파레토 본인이 언급한 적은 없지만 후대 학자들은 이를 Economic Sociology로 명명하였다.[62]

b.     Economic Sociology 또는 Sociological Economics

파레토 자신은 사회학과 경제학의 연구 대상이 각각 사람의 비논리적인 행동과 논리적 행동이라고 하여 두 학문을 구분하였다. 그러나 Patrik Aspers(2001)는 이 파레토의 구분을 Formal Boundary라고 지칭하고 학문이 다루는 삶의 영역(sphere of life)에 따라 경제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으로 구분하여 이를 Substance Boundary라고 이름 붙였다. Aspers는 이 두 구분을 2차원 평면에 놓고 4가지의 학문 영역을 다시 구분하였다.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63]


Sphere of Life(Sustance)
The State of Science(Formal)
Economic
Social
Logical Actions
Economics
Logical Sociology[64]
Non-logical Actions
Economic Sociology
Sociology

economic sociology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 economic sociology과 과연 파레토 경제학의 사회학적 실마리인지 의문이 남는다. 비록 명칭은 경제사회학으로 붙었지만 사실 이 분야는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꼭 사회학(sociology)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Aspers(2001)와 파레토의 저작, 그리고 파레토 분배법칙, 계급이론, 그리고 이에 따른 엘리트 순환이론을 살펴보면 우리가 오늘날 거시경제학이라고 부르는 부분의 많은 부분을 파레토는 사회학적 기제를 통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비논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행동의 총계적 수준(aggregate level)은 논리적 인간인 homo economicus를 하나의 분자로 보아 역학적인 방법을 통해 분석하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65] 사람의 행동은 비논리적 사고에서 기인하기 때문이고 논리는 그 비논리적 행동을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파레토의 견해는 여기서도 드러난다.[66] 따라서 economic sociology라는 용어는 경제학적 분석 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Sociological Economics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뒤에서 파레토가 sociological economics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경제적 현상을 논할 것이다.

4.     경제학과 사회학의 통합-경기순환이론[67]

파레토의업적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경기순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형을 통해 파레토는 상호의존성의 법칙들이 인간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a.     경제의 팽창국면

경제가 팽창하는 국면에서는 생산설비가 소비재 부문에 투입될 것이고 따라서 총체적인 경제활동을 투기적(speculative)으로 만들 것이다. 이런 투기적 성향을 가진 생산자는 I type의 잔기(residue)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의 상업적인 부문을 관장하고 이 부문의 성장을 가속화시킨다.
이 때, 정치적인 부분은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행정부 조직의 팽창으로 나타난다. 힘은 분산되고 가장 직급이 낮은 공무원들(functionaries)에게까지 힘이 주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선거가 통제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는 상황을 야기한다.

전통주의(tradition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간의 신념 순환(cycle)은 경제적, 정치적 순환의 변화에 반응하여 변동하기 시작한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는 행위들에 대해 더욱 개방적이 될 것이고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을 것이다. , 경기팽창이 권력 분산으로 시작하여 자유주의의 부상(浮上)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반응들을 촉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입장에서 적절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예를 들면 사치와 같은 것에 더욱 관대해지게 된다.

파레토는 엘리트 순환이론을 경기 순환 이론에도 응용한다. 경기의 팽창 국면에서는 경제적 엘리트 게층 중 speculator계층이 힘을 얻게 된다. 1 유형의 잔기가 특징인 이들은 상업적 엘리트로서 과감한 경제활동을 통해 경기 팽창을 주도하는 동시에 지배적인 엘리트로 자리매김한다.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변동하면서 대중의 소비 습관도 변동하게 된다. 사람들은 점점 과감해지고 지출을 증가시켜 경기 팽창을 가속시킨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저축이 감소하여 자본 축적을 방하고 궁극적으로 경제가 반대 방향 즉, 경기 수축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된다.


b.     경제의 수축국면

이제 경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경기 수축으로 인해 생산설비는 더 이상 자본재 생산에 집중되지 않는다. 대신 생산설비들은 식료품(staple) 생산에 투입되고, 상업 부문은 보수적인(conservative) 공급자들에 의해 지배된다. 이 보수적 공급자들은 II type의 잔기를 보이며 투기(speculate)하려는 동기를 갖고 있지 않다. 팽창국면과는 달리 이때는 제 2 유형의 잔기를 특징으로 하는 rentier계층이 경제적 엘리트의 지위를 획득한다.[68]

동시에 사회의 행정부문에서 권력의 집중화 현상이 일어난다. 파레토에 따르면 이 시기의 정부 당국은 보수적이며 대중 통제를 위해 강제력(强制力)의 사용도 불사한다. 이런 추세에 따라 전반적인 대중의 분위기도 보수적으로 변화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규칙에 어긋나는 급진적 행동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않으며 검소와 같은 전통적 가치들을 유지하려고 한다. 소비는 여전히 감소하고 이는 경기 침체를 심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의 감소는 동시에 저축의 증가를 가져오고 결국 사회 전체의 자본축적을 증가시켜 경기 팽창의 계기가 된다. 이후 경제는 앞서 언급한 경기 팽창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모형은 모든 인간 사회의 구성 요소가 상호의존적이며 그 자체로 영원한 순환을 이어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파레토가 사회학자로서 거듭 강조하여 주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기순환이론은 파레토의 저작에서 다룬 많은 이론들과 요소들이 함께 응용되어 있으며, 때문에 경기순환이론은 그의 일반사회학의 전범(典範)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5.    경제학과 사회학의 통합-파레토 법칙(Pareto’s Law)

파레토의 Economic Sociology 혹은 Sociological Economics에 대한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저 유명한 파레토 법칙(Pareto’s Law)일 것이다. 파레토 법칙은 현대에 와서 다시 재조명 되며 2080의 법칙으로 언급되며 경영학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20%의 사람들이 80%의 부를 소유한다든가 20%의 상품이 80%의 매출을 가져온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 법칙은 파레토가 연역적인 방법이 아닌, 귀납적인 방법을 통해서 얻어낸 법칙이다. 파레토는 여러 국가들의 일정 기간 동안의 소득분배 상태를 연구하였다. 연구 대상은 영국,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독일의 몇몇 도시들 그리고 파리와 페루의 소득분배에 대한 자료로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사회를 포함하고 있다.[70] 결과는 다음의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은 소득이 를 넘는 가계의 숫자를 나타내고 A parameter이며 는 그래프의 기울기를 나타낸다. 파레토의 요지는 가 일정한 값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71] 다시 말해서, 소득 분포의 형태는 거의 항상 일정 범위 내에서 고정되어 있으며, 설령 이 소득 분포에 변화를 주기 위해 어떠한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사회가 원래 가지고 있던 분포 형태로 회귀한다. 파레토는 영국과 이탈리아 도시들의 소득분배가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음을 보이며 이런 형태가 여러 사회와 시대에서 유사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하였다.[72]

이는 파레토의 경험적 법칙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후대에 실증 연구와 기타 연구들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슘페터는 이에 대해 “’파레토 법칙이라 불리는 이 성과는 수많은 문헌이 고스란히 이것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다 바쳐졌다고 할 만한 사태를 자아내기에 이른다라고 평하며 이 법칙이 후대의 학자들에게 가져온 논란을 표현하고 있다.[73] 이러한 논란을 살펴보면 파레토 법칙에서 말하듯이 과연 가 일정하여 재분배 정책과 같은 평등주의(egalitarian) 정책이 효과가 없을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바는 파레토 법칙이 파레토의 사회학과 경제학의 통합적 연구에서 어떠한 맥락에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파레토의 이론이 맞든 맞지 않든, 파레토는 당시에 이러한 법칙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던(overjoyed) 것으로 보인다.(Persky, 1992) 파레토는 이를 단지 경험적으로 관찰하여 정리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원인도 찾아내려고 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원인보다는 사회적인 원인에 기인해 있었다. 이는 어느 정도 파레토의 엘리트 이론하고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74]파레토는 이러한 소득 분포가 사회의 제도, 사람의 원천적 능력, 그리고 우연[75]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기본적인 능력이나 우연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자원을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어떠한 사회제도든 그 사회에서 성공한 구성원에게는 각 사회마다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보상을 해줄 것이다. 사회제도마다 그 보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소득 분배가 같은 것은 파레토에 따르면 자원을 성공적으로 획득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갖기 위해 끊임 없는 투쟁을 벌이기 보다는 일정 수준까지 획득하면 그 수준에서 만족하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가 유사한 분배 패턴을 갖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이러한 분배 패턴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사회적 힘이 다시 원래의 분배 상태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76]

파레토의 이 분배에 관한 이론이 맞는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왜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부의 불균등한 분배가 마치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단지 경제적으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도입해서 불평등의 기제를 없애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에는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적인 요인들이 다수 존재하며, 그 불평등의 수준도 사회적인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파레토의 이러한 경제사회학적 관점을 수용하게 된다면, 그 어떤 재분배 정책도 결국 사회적 압력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일체의 국가의 정책은 무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그 대신 파레토는 전체의 평균(mean)을 높이는 방법을 권한다.[77] 사회의 평균적인 부의 수준이 상승하면서 부의 분배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절대적인 빈곤선 이하에 위치한 계층의 비율은 많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III.  결론

파레토의 화려한 순수경제학적 성과와 엘리트 이론으로 대표되는 그의 냉소적인 사회학적 성과는 특기할 만하다. 비록 슘페터는 그의 책에서 파레토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후대를 위해 디딤돌을 놓은 경제학자로 평가하지만 순수경제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특히 후생경제학에서 그의 업적은 선구자적이다. 파레토 법칙은 사회개혁에 대해 비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의 엘리트주의 또한 그러하지만 후생경제학 중 재정학과 조세론과 같은 학문 분과에서 조세와 재정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더 나은 분배구조를 만들어 나가는데 그의 업적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일견 아이러니하게 보이기도 한다. 사회학적 업적 또한 경제학의 업적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충분히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78]

 그의 주목할 만한 학문적 성과와 함께 그의 연구활동 또한 현대의 경제학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고 있다. 파레토는 사회를 분석함에 있어서 경제학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회학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또한 그 분석에 있어서 복잡함을 감안하고 사회학에서 인간의 감정에 대한 논의와 비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자신의 학문체계를 완성하려 했다. 비록 그 노력이 뚜렷한 결실을 거두지 못했지만 학문적 한계를 넘어서려 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이는 특히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그 존재 의의가 위협 받고 있는 현대 경제학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79] 파레토가 경제학의 한계를 인정하였던 것처럼 현대 경제학도 현실 분석에 있어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경제학이 예측하고 분석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누어 다른 학문과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제학의 분석 가능 영역을 넓혀주는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경제학에 더 많은 분석 도구를 가져와 분석을 풍부하게 해주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80]또한 경제학이 겸손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의 여왕으로서의 지위를 고집하는 경제학 제국주의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경제학도에 있어서 파레토는 귀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제학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실무능력과 경험도 겸비하였으며 자신의 경험을 학문의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이론가이기도 했다. 파레토는 현실에서 자신이 얻은 경험을 이론에 투사하고 다시 그 이론을 통해 현실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론과 현실이 동떨어지지 않는 모범을 보였다. 그의 귀족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견해도 많은 비판을 받아 왔지만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았다는 측면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이 어떠한가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파레토의 귀족적인 고고함은 실마리를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정도영 역, 서울 :한길사, pp. 210 슘페터의 평가에 따르면 파레토는 공학자로서 경제학의 도구인 수학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무 경험도 풍부하였다. 그러나 그를 경제학자로서 이끈 힘은 그의 젊은 시절의 경제와 사회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이었다. 이는 그가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또 왈라스라는 위대한 경제학자의 후임으로 부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2]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Inc,, pp. 10
[3] Ibid. pp. 11
[4] Ibid. pp. 11
[5]ibid. pp. 214
[6]Ibid. pp.215
[7]S. 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3-4
[8] Ibid. pp.6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슘페터는 무솔리니가 파레토에게 원로원 의원직을 수여하면서 무솔리니 자기 스스로를 빛나게 한 것뿐이라고 파레토를 대변하고 있다.
[9]Coser, Lewis A(2010), 사회사상사, 신용하, 박명규 역, 서울 :Cengage Learning pp. 446
[10]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김문조 외 8인 역, 서울 : 일신사 pp. 483
[11] 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38
[12] Ibid. pp. 35
[13] Ibid. pp. 33
[14]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73
[15] Ibid. pp. 35
[16] Ibid. pp. 35
[17] Paul Dalziel and Jane Higgins(2006), Pareto, Parsons, and the Boundary between Economics and Sociology, American Journal of Economics and Sociology, Vol. 65, No. 1, pp. 111
[18] Ibid, pp. 119
[19] Ibid, pp. 119
[20]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29
[21] Ibid. 파레토는 이것을 지표함수(index functions)라고 지칭하였다.
[22] Ibid. pp.2300
[23]M. McLure(2001), Pareto, Economics and Society-Mechanical analogy, New York : Routledge, pp. 42
[24] Ibid. utility가 개개인이 자신의 후생(well-being)과 특정한 행동에서 오는 즐거운 감정간의 관계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assessment)에 기반한 가중치를 이용하여 ophelimity를가중평균한 것이다.
[25] Ibid. pp.43
[26] Ibid. pp. 91
[27]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33
[28]M. McLure(2001), Pareto, Economics and Society-Mechanical analogy, 힉스는“we talk of Pareto-optimality and not Edgeworth-optimality, and we are right to do so.”라고 언급하였다.
[29]박천익(1998), 파레토 복지경제학, 대구대학교 출판부, pp. 45
[30]벤담의 공리주의는 과거 전제 왕정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출발하였다. 당시 국가가 소수의 귀족과 왕을 위하여 운영되는 것을 비판하여 사회구성원 모두의 효용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논리 하에 모든 개인의 효용을 단순합산하여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다만 여기서 각 개인에게 평등한 결과가 돌아가려면 개인의 효용함수가 모두 동일해야 가능하다.
[31] Ibid. pp.47
[32]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34
[33] Ibid. pp.237
[34]M. McLure(2001), Pareto, Economics and Society-Mechanical analogy, pp.94-95. 이러한 아이디어는 후생경제학에 있어서 일단 파레토 최적을 달성한 뒤 보상 원리에 따라 배분함으로써 원하는 분배 상태를 이끌어 낸다는 Kaldor-Hicks 기준과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35]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34 왈라스가 자신의 순수경제학 요론(Elements d’economicpolitique pure)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으로 모든 다른 상품의 가치를 그것으로써 표현하는 가치척도의 기능을 가진 기준재를 말한다. 이것은 가격표시기능을 가질 뿐 화폐의 다른 기능, 예를 들면 가치 저장 기능 등을 가지지는 않으므로 화폐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36] Ibid. pp. 238
[37]박천익(1998), 파레토 복지경제학, pp. 24, 85
[38] Ibid. pp.25, 92-97
[39] Ibid. pp. 102-111
[40]Ibid. 슘페터의파레토에 대한 전반적 평가이다.
[41]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Inc.
pp. 37
[42]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김문조 외 8인 역, 서울 : 일신사 pp. 463
[43]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Inc.
pp. 37
[44]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김문조 외 8인 역, 서울 : 일신사 pp. 466
[45]Ibid. pp. 465
[46] Ibid pp. 465
[47] Ibid. pp. 465
[48] Ibid. pp. 466
[49] Ibid. pp. 466
[50] 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49
[51]Ibid. pp. 49
[52] Ibid.pp. 41
[53]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67
[54]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279
[55]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70
[56]박천익(1998), 파레토 복지경제학, pp.25
그러나 경제학을 보다 분명하고 온전하게 다듬기 위해서는 이러한 그의 학문적 시각은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사회학에 관한 관심과 이해를 경제학과 연관 지워보려는 노력을 했다. 파레토는 사회학의 도움이 없는 경제학은 동태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학문적 바탕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57]Patrik Aspers(2001), Crossing the Boundary of Economics and Sociology: The Case of Vilfredo Pareto, American Journal of Economics and Sociology, Vol. 60, No. 2, pp. 519
[58] Ibid. pp.522-523
[59]Ibid. pp.524 에서 파레토는 다음과 같이 순수경제학과 응용경제학의 차이를 예시를 들어 구분하고 있다.이런파레토의 구분은 현대 경제학에 있어서 실증 경제학과 규범 경제학의 구분을 연상하게 한다.
“Pure economics determines the function of money in the economic sphere of life. Applied economics describes monetary systems now in existence, monetary systems of the past, their transformation and so on.”
[60]파레토는 사회학을 두고 residual이라고 규정하였다(1966: 106-07)
[61]Ibd. pp.524
[62]Ibid. pp.519
[63]Ibid. pp.527 Economic Sociology Logical Sociology는 파레토 본인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Aspers가 파레토의 저작에서 추론해낸 분야이다.
[64]논리적이나 비경제적인 분야로 파레토는 군사적, 법적, 과학적 행동을 예로 들고 있다.(Aspers 2001)
[65] Ibid. pp.528-529
[66]파레토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비논리적이라고 본 데에서도 신고전학파와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미시경제적 부분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적 부분에도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을 가정하여 제약 조건하에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개인이 행동하고 이 개인의 행동을 총합하여 거시 경제적 행태를 관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파레토에게서 합리적 인간(논리적 인간)은 순수경제학 분석에 국한되며 그 이상은 신고전학파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방법을 통해서 분석이 불가능하다.
[67] Charles H. Powers and Robert A. Hanneman(1983), Pareto's Theory of Social and Economic Cycles: A Formal Model and Simulation, Sociological Theory, Vol. 1, pp. 60-63, 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83-488 
[68]이는 케인즈(J. M. Keynes)금리생활자의 안락사라는 과격한 주장을 생각나게 한다. , 자본주의의 활력을 위해서는 금리생활자 계층의 몰락이 필요한 것처럼 파레토의 자본주의 이론에서도 경기 팽창을 위해서는 이들 계층의 퇴진과 speculator계층의 등장이 필요하다. speculator 계층도 케인즈의 animal spirit을 연상시키는 개념이다
[69]Charles H. Powers and Robert A. Hanneman(1983), Pareto's Theory of Social and Economic Cycles: A Formal Model and Simulation, pp. 61
[70]Joseph Persky(1992), Retrospectives: Pareto’s Law, Th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Vol. 6, No. 2 (Spring, 1992), pp. 182
[71] Ibid. pp. 183
[72]Ibid. pp. 184
[73]J.A.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18
[74]Joseph Persky(1992), Retrospectives: Pareto’s Law, pp. 184
[75]Bruce H. Mayhew and Paul T. Schollaert(1980), Social Morphology of Paretos Economic Elite, Social Forces, Vol. 59, No.1, pp. 25-43 이 연구에서 저자들은 통계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정한 조건 하에서 각 개인의 소득이 어떻게 변동하는지를 살펴 보았다. 통계 시뮬레이션 결과 높은 확률로 항상 소득 분포의 상당수를 가지는 엘리트 계층이 단지 우연에 의해서 등장하였다. 저자들은 이에 덧붙여 파레토는 단지 우연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회적 요인이 소득 분포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으므로 엘리트 계층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76]Joseph Persky(1992), Retrospectives: Pareto’s Law, pp. 184-185
[77]Ibid. pp. 185
[78].A.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248
[79]영국 여왕이 영국의 경제학자들에게 경제학이 왜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였고 이에 대해 영국 경제학자들이 답변한 “Letter to the Queen”은 유명하다.
[80]실제로 노동시장론에 있어서 경제사회학적 설명 방법이 쓰이고 있다.

2013년 6월 30일 일요일

Letter to the Queen

2009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영국 여왕이 경제학자들에게 왜 경제학은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냐는 질문을 하였고 이에 영국 학술원은 영국 여왕에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 전문을 번역하여 싣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런던 정경대를 지난 11월 방문하셨을 때, 폐하께서는 아주 합당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왜 아무도 신용경색이 올 것을 알아 채지 못하였는가?’ 영국 학술원은 2009 6 17일에 폐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포럼을 개최하였습니다. 이 포럼에는 전문가부터 사업가, the City, 규제당국, 학자 그리고 정부당국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이 서한은 참석자들의 관점과 논의에서 지목되었던 사안들에 대한 요약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폐하의 질문에 올바른 답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 이 위기를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언제 발생할 것인가 또 위기가 얼마나 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문제의 본질만큼이나 고려해야 하는 것은 위기의 발생 시점입니다. 발생 시점을 알 때에만 행동할 수 있고 감독 당국이 그 권한으로 문제를 잠재울 수단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에 있어서의 불균형에 대한 많은 경고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국제 결제은행은 금융시장에서 리스크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는다고 수차례 경고를 했습니다. 우리의 영국은행(영란은행) 또한 연 2회 발간하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누차 경고를 해왔습니다. 리스크 관리는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현재 공적 자금에 의해 국유화 된 우리의 주요 은행 중 하나는 4,000명에 이르는 리스크 관리자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별적인 금융상품이나 대출계약의 리스크를 판단하는 것 보다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를 판단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리스크 계측은 금융 활동의 단면으로 국한되며 영국과 전세계의 가장 유능한 수학적 기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때로는 큰 그림을 보는데 실패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경제에 있어서의 불균형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세계적 호황을 누렸고, 특히 저개발국인 인도와 중국에서 그러한 호황으로 인해 삶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계적 저축 과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더 안전한 장기 자산의 수익률을 떨어뜨렸고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더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국가들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많은 상품들의 가격이 낮아져서 이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가계와 기업들도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이 더 쉬워져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곳 영국과 미국에서의 주택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이에 대해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경고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많은 사람들은 은행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금융의 마술사가 리스크 관리의 새롭고 천재적인 방법을 찾아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새로운 금융상품의 조합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시켜서 사실상 리스크를 제거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자만심으로 구성된, 희망사항이라는 것은 허황된 생각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금융시장이 변화했다는 확고한 신념 또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이 시장에 도취되었습니다. 이런 관점들은 작은 리스크와 단기를 예측하는데 적절한 금융경제 모형에 의해 뒷받침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극히 일부의 모형들만이 시장이 잘못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뽑힌 능력 있는 고위 간부들과 이사회 그리고 공적인 삶에서 증명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중견 간부들이 이끌어 나가는 은행을 신뢰하였습니다. 누구도 자신들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거나 그들이 경영하고 있는 금융기관에서 리스크를 능숙하게 검토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 세대의 은행가들과 금융가들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기만하고 그들을 선진 경제의 Pace-making engineer로 생각했던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낙관적 여론의 존재 하에서 이러한 발전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데 어려움을 노정(露呈)했습니다. 가계는 낮은 실업률에서 이익을 보고 있었고 신용과 싼 상품가격에서도 역시 이익을 보고 있었습니다. 기업들도 낮은 대출 이자율의 혜택을 보고 있었습니다. 은행가들은 엄청난 보너스를 받으며 그들의 사업을 전세계로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세수가 늘어나 학교와 병원에 대한 공공지출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부인(否認)의 심리학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순환은 점점 더 힘을 얻었으나 그 것은 선순환이 아니라 망상과 착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위험들을 관리하도록 임무를 부여 받은 감독당국들에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판을 깨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에 필요한 수단이 있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전반적으로 규제 완화에 대한 압박이 있었습니다. City of London(과 금융서비스 당국)은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적 금융 규제의 모범으로 칭송 받았습니다.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의 버블을 미리 잡기보다는 이후의 후유증에 대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합의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의 경험에 의해 뒷받침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로 접어 들어서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경기후퇴를 다소간 피해갔습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가 버블 붕괴 이후 경제를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낮아서 경제가 과열되었다는 경고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영국은행의 통화정책 위원회는 위원회의 권한으로 종래에 볼 수 없었던 낮고 안정적인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자율이 역사적인 기준에 비추어 낮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는 정책이 위험을 막는데 역부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풍향과 반대로 구부리기 위해이자율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퍼져있던 관점은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쓰는 것이 가장 좋고 경제의 거대한 불균형을 통제하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각자의 가치에 따라 적절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성공의 표준적인 측정방법에 의하면 그들은 보통 잘하고 있었습니다. 실패는 서로 연결된 불균형의 총계적인 수준을 보지 못하는 데서 왔습니다. 이는 집단적 심리와 금융, 정책 결정자들의 주문(呪文)과 결합되어 위험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개별적 위험은 적절히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체제에 걸친 리스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폐하께 요약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위기의 시기, 정도, 심도(深度)에 대해 예측하는 데 실패하였고 이에 대처하는데도 실패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위기는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영국과 전세계의 사람들의 집합적인 망상에서 주로 기인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체제 전반에 걸친 위험을 이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폐하의 질문의 핵심이 예측실패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영국 학술원은 폐하의 재무성, 내각, 기업혁신성(Department for Business, Innovation & Skills), 영국은행, 금융감독당국의 신료들이 어떻게 새로운, 좀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폐하께서 다시는 이런 질문을 하시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것입니다. 학술원은 좀더 광범위하게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할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세미나를 개최할 것입니다. 저희는 그 결과를 폐하께 보고 드릴 것입니다. 과거의 사건들은 유익한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이 충격이 정말로 유익한지 아닌지는 우리가 솔직하게 교훈들을 분석하고 미래에 적용하는지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We have the honour to remain, Madam,

Your Majesty’s most humble and obedient servants

2013년 6월 28일 금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1)-경제학사

자 일단 경제학사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근대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이전에는 중상학파와 중농학파가 있었습니다. 중상학파는 경제에 있어 금은으로 상징되는 귀금속이 국부(國富)라고 생각하여 금은을 닥치는대로 국경 안으로 모으는데만 집중했습니다. 때문에 보호무역주의가 성행하게 되고 국가가 나서서 산업을 장려하는 일이 흔했죠. 영국에서는 플랑드르 지방(지금의 벨기에) 해안가에 '영국에서 임금을 후하게 줄테니 건너와라'라는 내용이 담긴 삐라를 뿌려서 직물공들을 빼가기도 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기술자의 유출을 막기 위해 별의별 제한을 다 하고 영국에서는 양모의 불법적 유출을 막기 위해 양모를 실은 마차는 특별한 표식을 해야했습니다.

아담스미스는 이러한 경향을 비판하며 국가의 부가 귀금속에서 나오지 않으며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즉, 부가가치의 생산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종합하면 노동이 상품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노동가치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로부터 고전학파의 오랜 전통인 노동가치론이 등장합니다. 노동가치론은 리카르도-JS(종석)밀로 이어지고 이는 마르크스에게 계승됩니다. 사실 마르크스가 그런 측면에서 고전학파의 적자라고 할 수 있죠. 나머지는 다 고전학파의 이단이고 배신자들입니다(죽어라 얏얏)

그렇다면 종석 밀로부터 나온 다른 한 쪽의 배신자들은 뭘 믿으러 갔냐 하면 바로 한계효용입니다. 제가 이번 주 내내 싸워 온 빠레또(새누리당 국회의원이신 이만우 교수의 발음을 옮겨 왔습니다) 같은 사람들이 이 한계효용이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죠. 한계효용은 세 명의 경제학자에게 거의 동시에 나옵니다. 이들은 영국의 제본스, 오스트리아의 멩거, 그리고 프랑스의 왈라스(사실 정확한 발음은 발라스 라고 합니다. 불어 이름이지만 뒤의 s를 발음 하는 것이 가문의 전통이라고 박만섭 교수님이 그러시더군요)입니다. 이들의 한계효용이론은 서로 알고 그런 것도 아닌데 거의 동시에 거의 유사한 내용이 나오게 됩니다. 이를 경제학사에선 '한계혁명'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한계효용은 노동가치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 하면 노동가치론을 폐기시켰습니다. 즉, 물건의 가치가 노동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만족으로부터 온다고 정의하면서 노동가치론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에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관주의적 해석도 있었고 에지워스의 기수적 효용 파레토의 서수적 효용에 이어서 현시선호이론도 나오지만 이런건 알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이 한계혁명 이후 기라성 같은 마셜과 케인즈가 나오고 이후 경제학계는 완전히 케인지언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이들은 한계효용의 바탕 아래 그 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주류경제학에 속했습니다. 70년대 이후  프리드먼 등의 등장과 RBC이론의 전개 등으로 케인지언은 대부분 사라지고 신고전학파종합이 결성되어 최근까지 왔습니다.

종석 밀의 책을 마르크스도 읽었습니다. 종석 밀의 경제원론 책은 맨큐의 경제학(별로 좋은 책도 아닌데)처럼 많이 팔렸거든요. 경제학 책으로 떼돈 번 사람이 경제학계엔 밀, 마셜, 사뮤엘슨 이렇게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맨큐도 추가군요. 아 뭐 여튼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밀고 나갔고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 중 스라파와 칼레츠키라는 두 명의 포스트 케인지언의 원류 격인 학자들이 등장합니다. 스라파의 이름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스라파는 본래 이탈리아의 경제학자로 아버지는 법대 교수였습니다. 무솔리니 집권 이후 스라파가 자꾸 신문에 무솔리니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파시스트 정권은 스라파의 아버지를 통해 스라파에게 압력을 넣으려 합니다. 그러자 스라파의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다 하는군요 "내 아들이 그랬다면 그게 맞을 거요."

스라파는 결국 케인즈가 파시즘을 피해 영국으로 빼내옵니다. 칼레츠키도 유사한 경우였습니다. 사실 칼레츠키는 케인즈보다 유효수요이론에 관한 논문을 더 일찍 발표하지만 폴란드어로 되어 있어서 주목받지 못합니다.(학문하려면 역시 천조국 말을 해야합니다) 그도 케인즈가 폴란드의 전화에서 빼내서 영국에서 학문 활동을 하게 됩니다.

스라파에 대해서는 일화가 있는데 이 사람 논문도 지지리 안 쓰고 그랬지만 한 때 마셜도 논박할 정도의 날카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쓴 논문 갯수도 몇 개 안 된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완벽주의 성격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강의를 맡다가 케인즈에게 도저히 못 맡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강의 준비를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케인즈는 스라파에게 케임브리지 대학교 마셜 도서관(경제학 도서관)의 사서 자리를 주고 대학원생들 지도만 맡겼다고 하죠. 스라파는 평생 사서로 살다 죽습니다.

그리고 포스트 케인지언에서는 케인즈가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만 논란이 많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케인즈는 자본론을 읽은 뒤 "별 특별한게 없는, 뻔한 이야기"라며 던져 버렸다고 하죠. 그렇지만 거만한 영국 엘리트 특유의, 남의 영향을 받은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그런 태도를 보이게 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여기서, 칼레츠키, 스라파, 케인즈,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빼와서 새로운 학문체계를 구축합니다. 케인즈의 이론을 발전시킨다는 이름에서 학파 이름은 포스트 케인지언이 되었죠.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앞으로의 포스팅에서 얘기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 포스팅에 앞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글을 올린다고 올린다고 하고 일신상의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이제 프롤로그를 쓰게 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고등학교 때 소일거리로 이 책 저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 책도 많이 집어 들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 많이 읽었던 경제학책은 장하준 교수의 책이 아니었나 싶네요. 지금은 그의 의견에 찬성하진 않지만 그래도 비주류 경제학으로서 들어가는 길에 확실히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동시에 과외 선생님 집에 80년대 소위 빨간 책을 보면서 마르크스의 책에도 관심을 가져서 정말 수박 겉핥기 식으로 깔짝대다가 대학에 왔죠. 대학에 와서 제대로 된 마르크스 경제학을 배울 꿈에 부풀었는데 이런... 학회 세미나는 그저 그렇고 학과 전공 선택에 딱 한 과목 정치경제학 관련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듣고 나서 B+를 받았습니다. Corn Model로 재생산 표식을 만드는 걸 거의 못 그려서요.

알량한 관심을 가지고 2학년 이후 시험 치고 복학해서 학교에 있는 소위 비주류 수업은 다 들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노사관계론과 서양경제사를 들었고 이번 학기 경제학사와 비주류 경제학을 들었네요. 노사관계론은 제도주의랄까 경제사회학이랄까 노동 시장에서의 노사관계에 대한 분석을 단지 고용주와 피고용인 혹은 생산요소시장 분석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법, 경영 등 많은 요인을 도입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사례 위주 강의라서 케이스 스터디를 하면서 꽤 많은 걸 배웠네요. 그리고 비주류 경제학이 바로 이제부터 포스팅 하려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입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하면 뉴 케인지언하고 다른게 뭐냐라고 물으실겁니다. 사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자로서 강단에서 교수로 서 있는 건 제가 들은 수업의 교수님이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교수님은 제가 마이크 조교 한다고 번역하신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손수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앞으로 포스팅할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박만섭 교수님의 수업 내용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워낙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 여러분과 공유하려 하니 부족한 점 있어도 해량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돌아와서 뉴 케인지언하고 뭐가 다르냐. 뉴 케인지언엔 뭐 맨큐 같은 사람이 있다고들 하죠. 뉴 케인지언은 사실 '신고전학파종합'을 따르고 있는 경제학자들입니다. 신고전학파종합이란 단기에서는 케인즈의 주장대로 불완전고용과 가격 경직성이 존재하지만 장기에서는 신고전학파 혹은 고전학파의 주장대로 완전고용과 가격의 완전 탄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근래의 경제학의 흐름을 말합니다. 정말 최근에는 RBC로 대표되는 신고전학파와 뉴 케인지언이 다시 갈라선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포스트 케인지언은 어디서 나왔는가하면 뉴 케인지언보다 훨씬 위로 올라갑니다. 그들의 연원에 대해 알려면 경제학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자세한 경제학사 강의는 또 김균 교수님의 강의록을 통해 찾아뵐 기회가 있을지 모르나 여기서는 간략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면 읽으시는데 힘드니 다음 포스팅에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