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5)-Production

안녕하세요. 원래 이 블로그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었는데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시덥잖은 뻘글로 지면을 많이 채워넣었습니다. 이제 로스쿨 입시도 모두 끝났고 본연의 목적에 좀더 충실하기 위해 연재를 재개할까 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 연재를 할 때에는 꼭 술이 들어가야 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오늘 하는 부분은 굉장히 기술적이라면 기술적인 부분입니다.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이론'입니다. 생산이론이란 대개 기업의 생산함수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기업의 생산함수란 투입요소에 따른 산출량을 나타내는 함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보통 투입요소로 노동과 자본을 듭니다. 각각 알파벳으로 L과 K라 하죠. 자본(capital)을 K로 나타내는 이유는 아마 소비(consumption)과 차이를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어로 자본은 Kapital이죠.

신고전학파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로 생각하는 생산요소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동, 자본, 토지 입니다. 보통 토지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지대"부분에서 다루게 됩니다. 토지는 주어진 수량만이 존재하므로 생산량에 따라 그 투입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고정되어 있지요. 그래서 분석 대상으로 유의미한 것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입니다. 자본의 가격은 이자이며 노동의 가격은 임금이고 토지의 가격은 지대입니다. 그리고 각 생산요소의 가격은 생산요소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므로 생산요소가 생산에 기여하는 만큼 주어지게 됩니다. 즉 노동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인 임금은 노동이 생산물에 기여한 만큼 책정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신고전학파 이론에서는 분배문제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리게 됩니다. 각 생산요소의 제공자인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는 자신이 생산에 기여한 몫만큼 받아가면 되는 것이고 이에 대해 신고전학파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는 우리들이 잘 알 것입니다.

신고전학파의 생산함수에서 기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비용극소화+이윤극대화입니다. 흔히 기업이 비용만 극소화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기업의 목표는 이윤극대화입니다. 이윤=수입-비용 이지요. 둘 사이의 차이가 크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생산요소의 수량과 가격은 반비례합니다. 희소한 생산요소는 그 가격을 더 받게 되는 것이지요. 노동가능 인구가 적으면 임금은 올라가고 자본이 희소한 곳에서는 이자율이 높아지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 경제 발전기인 60~70년대 은행의 공식 이자율은 낮았지만 이는 관치금융으로 인한 것이었고 실제 돈을 빌릴 수 있었던 사채 시장의 이자율은 50%였습니다. 자본이 희소했던 탓이지요. 때문에 은행 문턱이 천국 문턱보다 높다는 말이 나왔고요.

신고전학파의 생산함수는 기업이 노동과 자본의 비율(K/L)을 이 생산요소 가격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생산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신고전학파의 가정에 따르면 생산기술은 자본과 노동의 가격의 변동에 따라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언제든지 바꾸어가며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자본과 노동이 대체 가능한 것이지요. 노동의 가격인 임금이 비싸고 자본의 가격인 이자율이 싸면 노동 고용을 줄이고 자본 고용을 늘리면 됩니다. 공장을 기계화 하는 것이지요. 반대의 경우엔 거꾸로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학파는 이에 대해 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씁니다. 한번 정한 생산기술, 다시 말하자면 노동과 자본의 투입비율은 어느 정도까지 바꾸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공정은 상당히 기술집약적인데 거기에 자본 가격이 비싸졌다고 사람으로 때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산업이 이와 같은 형태를 가졌는데 맘대로 생산기술을 바꾸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주장입니다. 특히 개별기업에 대해서는 이런 가정이 적용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이론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살펴보겠습니다.

(1)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러한 '대체'에 별로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비율이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시작하지요. 이 경우 노동과 자본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자본이 일정하게 존재할 때 노동 고용을 아무리 늘려도 생산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라인이 한정되어 있는데 아무리 많은 기술자를 투입해도 자동차 생산량이 늘지 않는 것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포스트 케인지언은 자율적 수요(autonomous demand)에 중점을 둡니다. 거시경제에서 수요란 소비+투자를 의미합니다. 소비재 수요와 자본재 수요를 말하는 것이지요.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 소비는 소득에 의해 결정되고 투자는 이자율의 함수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자율과 소득 이외에도 거시경제에서의 수요측면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경제 외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3)no use of aggregated capital: 이는 자본 총계를 표시하는 신고전학파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본을 단일한 수량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는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를 여기에 소개하는 것만 해도 많은 지면을 잡아먹을 것이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경제학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니 궁금하신 분은 찾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소위 "자본논쟁"이라고 합니다. 자본을 단일한 수량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가정 아래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다부문 모형을 사용합니다. 즉 각각의 자본재도 경제 내에서의 하나의 생산물로 보아 행렬 모형(연립방정식 모형)으로 만들어 각 재화가 투입되어 다른 재화를 만드는 모형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행렬 모형을 표현하자면 복잡하니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한 재화의 가치=투입된 모든 재화의 가치+잉여(=신투자+소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상품의 가치 내에는 그 상품을 만드느라 사용된 다른 상품(자본재)의 가치와 우리가 투입한 상품의 가치 이상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투입한 상품의 가치 이상의 가치 즉, 잉여는 우리가 소비해 버리거나 투자하는 형태로 실현되는 것입니다.(이렇게 말해도 어렵네요...)

연립방정식 모형이 되면 수요 공급함수로 어떤 상품의 가격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요 공급함수란 단순히 그 상품의 수량과 가격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인데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모형을 따른다면 가격=생산에 투입된 해당 재화와 다른 재화의 가치+잉여이므로 단순한 수량-가격 관계로 표현할 수 없게 되죠. 그래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수량-가격 관계의 수요공급함수를 쓰지 않습니다. 다만 공급과 수요의 개념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4) 각각의 상품에 대해서 한 상품의 총 산출량=중간재로 사용된 상품량+최종재로 사용된 상품량 으로 표시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이지요.

(5) 중간재의 가치+부가가치=생산물의 가치. 이도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6) 산출량과 가격은 수요 공급 함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많은 외부요인을 고려해야한다고 보기 때문에 수요 공급 함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느 가격에 해당하는 어떤 수량은 그 시점에서 경제적, 경제외적 상황에 의해 우연히 결정된 것이지요.

뭔가 신고전학파 생산이론과 대비하여 설명하였어야 했는데 그러면 너무 주저리주저리 길어질 것 같아 일단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생산이론만을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수학적 appendix가 있으나 굳이 써야할 것 같지 않아 생략하였습니다. 오늘도 짧지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만.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Shoe Collector Nikolay

으어 벌써 1차 발표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내일 이 시간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 궁금하네요. 오늘 글은 좀 가벼운 주제입니다. 신발 수집이 취미인 저의 의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요. 긴장 되서 잠도 안 오는데 가볍게 쓸까 합니다.

신발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요 초등학생 때부터 모종의 집착(?) 같은게 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레고도 사야했고 게임 씨디도 모아야 했고 더더군다나 부모님은 신발이 닳기 전엔 안 사주시는게 당연했기 때문에 그냥 신고 있던 신발이 다 닳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아마 처음으로 나이키에서 나오는 농구화를 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땐 기분이 무척 좋았죠. 그리고 조던 시리즈로는 처음으로 에어조던 9을 샀습니다. 흰검이었고 얼마 전까지 거의 누더기가 된 채로 신발장에 있다가 버려진 것 같네요. 에어조던 9 흰검은 다음과 같은 모양입니다.
sneakersection.com에서 이미지 발췌
 
여튼 이걸 잘 신고 다니다가 저도 중학교 때부터는 이래저래 돈을 모으게 되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배려로 스스로 통장관리를 하게 되면서 집과 독립되어서 따로 주머니를 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통장 비밀번호를 부모님 모르게 해놓고 현금 카드를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바로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썼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아마 옥션에서 폼포짓 프로 블루를 샀던 것 같아요.














폼포짓 블루는 당시 학교에 신고 다니기에 조금 버거울 정도로 화려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 옥션은 신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짭션이라고 불리우며 멸시당하지만 옛날만 해도 농구화를 구하려면 옥션에서 구하거나 혹은 카페의 중고 사고팔기 게시판이 전부였습니다. 옥션만 해도 에스크로 거래로 신뢰할 수 있었지만 중고 장터는 정말 판매자의 신용으로 거래하는 것 말고는 없었죠. 전 여태껏 한번도 사기 당한 적이 없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컬렉션은 좀더 늘어났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에게는 조던 18.5를 받고 외할머니가 르브론 2를 사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르브론 2는 예쁜데다가 발도 편해서 몇 년 전에 다른 색으로 또 사서 신고 있습니다.



당시 농구 경기를 보면 상당수의 선수가 르브론 2를 신을 정도로 인기가 좋아서 "국민 농구화"라 불리곤 했습니다. 에어도 물컹물컹 좋아서 엄청 신었는데 결국 에어가 터져 버려서 주저앉아서 버리게 되었죠. 그래서 그 안타까움에 대학교에 와서 다시 사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샀던 것은 당시 신인이었던 카멜로 앤써니의 시그네이쳐 슈즈(한 선수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신발)인 멜로 1.5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갑피에 라인이 예쁜 신발이었죠.
 
멜로 1.5는 발도 편하고 그랬는데 이후 대학 들어 와서 자금 사정으로 팔아버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기 팬던트도 걸려 있는데 그 팬던트가 아마 어딘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무언가 테마를 정하거나 라인을 정해서 모아야 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예쁘면 사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했죠. 그러다 보니 별의별 쓸 데 없는 것도 사고 지금은 애물단지가 된 신발들은 대개 고등학교~대학 초년생 시절, 돈이 많지 않았을 때 계획성 없이 샀던 것들입니다. 그 때는 정말 왜 그랬는지 후회되네요. 조던 8을 헐값에 살 수 있는데도 옆에 있던 VC4(빈스카터의 시그네이쳐 모델)을 사질 않나...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다루는 돈의 액수가 좀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세뱃돈은 물론이고 용돈부터 장학금을 받을 경우 장학금의 부스러기까지 돈이 쏠쏠하게 모였죠. 전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광화문 교보에 달려가 신작 게임을 사는 한 편 호시탐탐 신발을 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빈발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신발을 "모은다"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나타내셨고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신발을 사오는 날엔 부모님하고 말도 안 할 정도였죠.
 
대학교 때까지 부모님과의 갈등은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시간이 싫었습니다. 전 눈치 보면서 신발 상자를 집에 가져오고 부모님은 화를 버럭 내시고 전 또 거기에 대들고... 어떻게 해결되었냐고요? 간단했습니다. 전혀 부모님이 상관할 수 없는 돈으로 신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장학금, 과외비, 월급... 결국 부모님은 제가 대학교 2학년이 지나면서 백기를 드셨고 신발 모으는 것에 대해 크게 나무라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취미"로 인정 받았달까요? 이제는 주로 "공간"이 문제가 됩니다. 사실 수납 공간이 좀 부족하긴 하거든요... 나무로 따로 신발장을 짜든지 해야하는데 집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초년생까지는 "남들 신는게 부러워서"산 신발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획없이 막 샀던 거죠. 그 때 산 것 중에 그래도 잘 샀다고 생각 되는 신발이 있습니다. 줌 20-5-5인데 르브론의 경기 성적을 나타낸 거라는데 까먹었네요.
 
사실 농구화의 치명적 단점이 있는데 "통풍"입니다. 여름엔 땀이 좀 차죠. 근데 이 모델은 통풍이 워낙 잘 되서 땀이 안 차는데다가 착용감도 좋았습니다. 결국 다른 색깔로 똑같은 모델을 또 샀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신발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컬렉션을 조던으로 시작한게 아니라 르브론으로 시작했네요. 르브론 2부터 꾸준히 사서 3, 4, 5, 6, 8, 9, 10까지 사모았습니다. 7과 11은 제 취향과 안 맞아 안 샀지만요. 당시 조던은 뭐가 뭔지도 몰랐고 그나마 매년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는 르브론 시리즈가 접근성이 좋았습니다. 조던은 당시도 리트로(재발매)하던 시절이라 정확하게 언제 나오고 어떤 모델이 나오는지 모르면 모으기 힘들었죠. 그래서 조던은 제가 풋셀에 가입하고 대학교 들어와 돈을 스스로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모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초기 컬렉터 때의 얘기입니다. 다음 편에선 제 소장품 사진과 대학교 시절 모았던 스토리 등등으로 찾아뵙겠습니다.
 



2013년 10월 11일 금요일

동양 사태를 보며 든 감상

안녕하세요 니콜라이입니다. 로스쿨 자기소개서와 원서질이 이제서야 끝났네요. 그래서 이제 글을 좀 더 쓸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확답은 못드립니다.)

최근에 금융 관련 이슈가 좀 있었네요. 동양증권 관련해서 이슈가 있었는데 영 사실 관계 파악이 쉽지 않네요. 여기 저기 말이 다 다르고 동양증권 측에서도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계열사의 부실 채권을 잘 포장해서 팔았다는 얘기도 있고 그렇네요.

제 생각은 사실 항상 일관적인데 "구조를 모르는 금융상품은 건들지 말라"입니다. 동양그룹 자체의 재무구조가 올해 들어 상당히 악화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추이를 계속 지켜볼 능력이나 시간 혹은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지분상품(주식)이든 채무상품(채권 혹은 어음)이든 사면 안 되는 것이지요. 좀 더 높은 이자를 주거나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해서 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증권사들이 이런 상품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좋은 양 포장해서 파는 건 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저로서는 기본적인 금융교육 혹은 소양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데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조금만 알아도 건드리지 않을 상품들을 사람들은 너무 많이 건드립니다. 키코 사태도 그랬죠. 물론 기업들도 환차익을 노리고 파생상품의 수익성에 매료 되어 샀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 상품이 은행한테 기본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 상품 구조를 제대로 모르고 덥석 은행의 구매 권유 혹은 꺾어팔기 등에 의해 사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상품 판매와 구매에 있어서 은행이나 증권사가 판매시 지켜야 할 법적 절차를 모두 지켰다면 사실 할 말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상으로 지식을 갖추고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는 투자자의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따라서 정말 기본적인 금융교육을 의무교육부터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경제/금융 원칙이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높은 위험에 높은 수익이 아니라 낮은 위험에 높은 수익이라면 그건 둘 중 하나입니다. 첫째, 사기입니다. 둘째, 제도나 기타 등등의 원인에 기인하는 지대(rent)로 인한 차익거래(arbitrage)인 경우입니다. 따라서 수익이 높다면 반드시 그 앞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게 사기는 아닐까? 이게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것만 잘 지켜도 사실 금융이나 기타 등등 투자로 인한 큰 위험은 비껴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시스템 리스크는 헷지(위험회피) 되지 않는게 함정이지만요)

동양증권 사태로 인해 우량 회사채 가격이 내려간다는데 만약 그 회사채 발행 기업의 재무구조가 우량하고 현금흐름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를 상환할 능력이 있다면 가격이 정상화되지 않을까 싶네요. 금융사들에 연쇄 위기가 와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은 수익률 구조(=무위험이자율+시장리스크*시장민감도+오차항(error term))에서 통계적으로 잡아내기 힘든 일종의 잡음인 '오차항'에 해당할 것 같아서 곧 수익률이 평균으로 회귀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금융 관련 썰을 풀었는데 전 원체 무식해서 사실 주식도 안 건드리고 펀드도 국공채와 우량채권으로 구성된 펀드 들고 그럽니다. 첫째는 제가 워낙 게을러서 투자 대상 회사의 재무제표와 투자보고서 같은 걸 보질 않아서 그렇고요 둘째는 하다가 한번 적은 돈이지만 확 말아 먹은 적이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도 주식은 안 할 생각입니다. 사실 금융 쪽도 이미 발행된 주식과 채권의 유통을 담당하는 2차 시장보다는 기업이 직접 자금을 조달해서 주식과 채권을 신규로 발행하는 발행시장(1차 시장)에도 관심이 많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동양 사태로 평생 모은 소중한 돈을 잃게 되신 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사태가 조속히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랍니다.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전문가로서의 책무

안녕하세요 니콜라이입니다. 추석 때 살 안 찌려고 발악을 하는데 참 힘들군요. 여러분 모두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살은 안 찌는 그런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본인의 텝스 시험이 끝났습니다. 잘 봤던 못 봤던 관계 없습니다. 끝났다는데 방점을 찍어야죠. 텝스 시험 같은 걸 대학교 입시에 쓰다니 그건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대학원 입시에 쓰는 것도 야만입니다. 영어에 대한 증오만 늘어가는군요.

각설하고 오늘은 자기소개서에 쓰다가 여기에도 좀 쓰고 싶은 주제를 쓰고 싶어서 블로그에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전문가의 책무'입니다.

트위터 하시는 분은 많이 느끼시겠지만 의사분들이 현행 의료체계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그 개선방안이나 문제점에 대해 토로하시는 것을 보셨을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제가 가끔 감사하다가 징징대는 것도 보셨을 것이고 요즘 로스쿨 나온 변호사가 7급 공무원으로 채용된다는 소식도 들으셨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느끼기엔 이 모든 것의 가운데에는 '적정 수입'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입니다. 즉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벌어가는 걸 우리 사회가 보장 혹은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실 노동시장론적 관점에서 본다면(제가 말하는 노동시장론은 꼭 신고전학파적 시각은 아닙니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해당 직종의 임금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도 진입장벽이나 면허 등 해당 노동시장에 시장 참여자들이 진입하는 것이 자유로운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소위 전문가, 전문직의 경우에는 진입장벽이나 국가에서 면허를 발행함으로써 시장 참여가 제한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시장 참여가 이러한 제한을 받게 되면 경제학에서는 지대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공급이 제한되므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게 되고 가격은 완전경쟁 상황, 즉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수준보다 올라가게 되죠. 따라서 해당 전문직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 또한 올라가게 됩니다. 여태까지 많은 전문직이 고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지대가 있었죠.

그러나 요즘 들어 각종 고시 합격자수가 크게 늘어나고 의대 등의 정원이 늘어나면서 아예 지대를 없애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전문직의 서비스의 가격은 낮추면서 소비자에게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하에서 말이죠. 그러나 과연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까요?

면허나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해당 전문직이 수행하는 일이 그 정도의 자격 요건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해부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의사면허를 줄 수 없고 회계이론을 모르는 사람이 회계감사를 할 수는 없죠. 그런데 만약 낮은 서비스 가격과 품질 개선을 이유로 많은 수의 면허를 발급한다고 하면 개별 전문가가 얻을 수 있는 수입은 낮아집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의 움직임은 하나입니다. 박리다매입니다. 즉 더 많은 양의 서비스를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서비스의 품질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의사의 경우는 박리다매를 하게 되면 환자를 더 많이, 대충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너무 적나라할지 모르지만 전문가는 받은 돈에 비례해서 그 정도 품질의 서비스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공장이 아니기 때문이죠. 전문가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전문가는 최대한 수입의 감소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일을 떠맡으면서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전문가 '조직'이 되는 경우 조직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더더욱 적정 수준의 수입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전문가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계감사 과정에서 요즘 문제시 되는 덤핑은 좀더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이건 여담이긴 하지만 감사를 받는 피감사인이 감사 수임료에 대한 거의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데다가 회계사의 숫자도 많이 증가하였고 또 자유수임계약제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회계법인들이 여러 사업 분야에 손을 대고 이전에는 손 대지 않았던 정부 용역에까지 입찰을 한다는 기사를 보면 회계시장 또한 전문가의 증가로 인한 지대감소로 문제를 겪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지대를 보장해줄 근거가 있냐는 반론에 부딪힐 수 있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전문가가 지대를 보장받고 적정수입을 챙기는 대신에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법제도의 정비를 통해서도 책무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것보다 전문가의 법률적 책임을 강화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대신에 제도적으로 지대를 보장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격은 어느 정도 높더라도 확실히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는 전문가 집단 스스로가 주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마음은 없으면서 자꾸만 지대 운운하며 정부와 사회가 '내가 이만큼 공부해서 '쯩'도 갖고 있는데 왜 돈은 못벌게 하냐'고 찡찡거리기만 한다면 그건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기생충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심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대는 일단 사회의 경제적 효율을 저하시키는 요인입니다. 지대를 추구하게 되면 사회 전체 구성원의 몫으로 돌아갈 후생이 지대를 가져가는 집단에게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문가가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그 지대를 가져가서 사회가 얻는 손실을 사회적 책무를 다해 벌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사회적 책무를 모두 다하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함과 동시에 서비스 품질 저하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사회에 합리적인 지대를 요구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 같은 생각을 한번 썰로 풀어 봤습니다. 이게 다 제가 먹고 살기 힘들어 져서... 는 아니고요, 요새 들어 지나치게 의료 시장 등에 있어서 소비자와 공급자, 그리고 정부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아서 한 번 써본 글이었습니다. 좋은 밤 보내시고 송편은 탄수화물 덩어리니 적당히 드시고 고기로 배울 채우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2013년 9월 1일 일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4)-Key Proposition

여러분 안녕하세요. 태만하기 이를 데 없군요 제가 생각해도... 원래 방학 기간 내로 블로그에 연재를 끝내려 했으나 생업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법학적성시험과 텝스를 봤습니다) 하면서 계속 미뤘네요. 그래도 봐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은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핵심 명제라고 할 만한 것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도 이전의 세계관과 같이 기존의 신고전학파 주류경제학과는 많이 다릅니다.

1) The economy is a historical process.(시간은 비가역적이다.)
-이 가정은 계량경제학적 방법론하고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량경제학은 통계적 방법에 의거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어진 독립변수가 같다면 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즉 함수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러한 시간 개념을 거부합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 고스란히 다시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신고전학파는 Logical time 즉, 논리적 시간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했을 때, 원인이 같다면 결과도 같겠지요.

2) We are in an uncertain world, and here expectations have significant impact.
-불확실성이란 케인즈의 경제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 세계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기대는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신고전학파의 합리적 기대와는 다른 종류의 기대입니다. 일종의 '관행(conven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관행에 따라 어느 정도 미래까지 행동하게 됩니다.

3) Institutions are important: megacorp, trade unions, the central government, the banking system, the international environment, etc.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제도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의 기업은 단순히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시장에서 독과점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화폐도 신고전학파의 개념처럼 거래의 매개가 아니라 화폐라는 일종의 제도로서 보면서 접근합니다. 때문에 화폐는 가치 저장수단으로서 기능하며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도라고 봅니다.

4)Capitalism is a class-divided society.
-마르크시스트들이 좋아할 명제입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기존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경제주체들을 동질적으로(homogeneously) 보는 관점을 거부합니다. 엄연히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소비-저축 이론을 다룰 때 각 계급의 소비성향과 저축성향을 다르게 설정해 줌으로써 결론에 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5) Economic agents commit themselves to contract denominated in money.
-뭔가 부연 설명하기에 양이 많은 것 같진 않습니다만, 경제 주체들은 거래를 함에 있어서 화폐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6) Labour is different from peanuts.
-네 노동은 당연히 땅콩과는 다릅니다. 같을 수가 있나요. 하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이나 땅콩이나 모두 똑같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입니다. 노동력의 가격은 임금이고 땅콩의 가격은 상품 가격으로서 표시될 뿐입니다.(마르크시스트들의 노동과 노동력의 차이에 대한 구분은 알고 있습니다만 섞어 쓰겠습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 둘을 같은 층위에서 분석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사실 이 주제는 저번 학기 내내 제 머릿속에서 떠돌았던 생각입니다. 노사관계론에서 경제사회학적 관점과 제도학파적 관점에서 노동 시장과 노사관계에 대해 다룬 이후로 노동은 분명히 다른 commodity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도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노사관계론에서는 노동이 특수한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환경에서 거래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고전학파적 한계주의 이론으로 접근하기 힘들다고 봅니다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를 재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이에 대해 하단에 상술하겠습니다.

노동시장의 작동에 대해서 신고전학파는 한계이론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즉 한계생산물의 시장가치가 노동자가 받아야할 임금이라는 뜻이지요. 쉽게 말하면 어떠한 물건을 생산했을 때 그 물건이 시장에서 평가되고 그 평가된 가격이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 아래서는 생산과 분배 이론이 통합됩니다. 다시 말해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과정과 판매 과정에서 정해지고 그에 따라 임금을 주기만 하면 되므로 별도의 분배이론을 발전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윤리학적 고찰을 통해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주님의 것은 주님에게'를 따질 껀수가 안 나오는 것이지요. 때문에 경제학에서 한계주의 학파 등장 이후 제 생각으로는 분배 정의에 대한 논의가 한참 후퇴했다고 봅니다. 윤리학적 요소도 많이 제거 되었고요.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한계주의의 등장 배경은 자세하게 서술할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재화의 희소성' 개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재화가 희소하니 막 한계가 오고 그에 따라 아껴 써야한다고 이해하시면 됩...(경제학도들은 알아서 걸러 들어 주세요) 여튼 노동이나 자본, 토지 모두 희소하니 주류 경제학(한계주의 경제학)에서는 막 아껴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희소성은 토지에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고 따라서 한계주의적 분석은 토지만 해당된다고 봅니다. 실제로 고전학파들이 한계적 방법론을 최초로 사용할 때는 토지에만 국한 되었습니다. 토지는 아시다시피 그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땅 좁은 나라는 한국 같이 토지의 가격인 지대가 터무니 없이 비쌀 수도 있습니다.(그보다는 역시 재테크 때문에...) 여기서 토지란 단순히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생할 수 없는 거의 모든 천연자원을 토지로 보통 퉁쳐서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동과 자본은 재생할 수 있을까요? 네 재생이 됩니다. 노동의 재생(혹은 재생산)은 애를 막 낳아서...(진짜 맞습니다) 하고 자본의 재생산은 자본이 투하 되어 자본재를 생산하고 그 자본재가 다시 자본을 축적하고 이러면서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재생산은 그 규모가 더 커지는 확대재생산과 그 반대인 축소재생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과 자본의 재생산성 때문에 희소성이란 개념에 기반한 한계주의적 분석은 노동과 자본의 분석에 쓰일 수 없다는 것이 포스트 케인지언의 입장입니다. 반면 제도주의적, 경제사회학적 노사관계론에서는 노동의 가격인 임금이 워낙 다른 많은 요소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에 신고전학파의 한계주의적 분석을 거부하는 것이고요.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서술하겠습니다.

저의 난잡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부지런히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럼 이만.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3)-Methodology: World View

제가 바쁜지라 연재한다고 해놓고 너무 뜸하네요. 술기운을 빌려 글을 써볼까 합니다. 술 때문에 글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잘 정리된 필기를 보고 올리고 있거든요.

주류경제학 그러니까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들은 방법론 자체에서 차이가 납니다. 세계를 바라보고 이를 분석하는 도구가 다른 것이지요.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과 신고전학파의 방법론적 차이에 대해서 기술하겠습니다.

1. 세계관(World View)

(1) 현실주의(Realism):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말은 경제이론의 가정들과 이론에 깔려 있는 구조들이 현실적이라는 뜻입니다. 즉, 주류경제학과 달리 비합리적인 소비자를 가정하며 불완전경쟁에 기반한 경제분석을 추구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신고전학파의 방법론은 도구주의(instrumentalism)입니다. 도구주의에 따르면 가정은 추상적이어도 되고 이론의 예측력만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2) 개방체계(Open System): 포스트 케인지언의 입장에서 경제란 개방된 체계이고 이에 따른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바벨탑(바벨탑으로 인해 언어가 분기했듯이 경제이론도 다를 수 있따)의 우화와 horse for courses(코스에 따른 적절한 말(馬))의 비유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경제체제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는 것을 수용하고 다원론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이론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포스트 케인지언은 역사적으로 비가역적(irreversible)이고 따라서 현상들은 경로의존적(path-dependent)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신고전학파의 견해는 당연히 폐쇄체계(closed system)일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 이론은 하나의 체계 내에서 완벽하게 적용되죠.

(3) Organism: Organism은 뭐라 번역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직주의도 아니겠고... 교수님이 모든 수업자료를 영문으로 주시는지라 가끔 애로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도 영국식 영어... 여튼 organism에 따르면 개체는 다른 개체와의 관계속에서 행동하므로 분석단위는 개별 개체가 아니라 개체들의 집합이 되어야 합니다. 즉 전체로부터 출발하여 개별적인 단위들을 분석하는 방법이지요. 마르크시즘도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경제학적인 용어로는 미시경제학의 거시적 기초(Macro Foundation of Microeconomics)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제도를 분석단위로 삼게 되는데 이에는 계급, 정부, 기업 등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신고전학파의 방법론은 개체주의입니다. 이는 개별 단위로부터 출발하여 전체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거시경제학의 미시적 기초로 불리웁니다. 요즘 거시경제학의 최신이론들은 미시적 최적화를 통해 집합적인 경제주체들이 어떤 행동을 분석하는 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죠.

(4)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합리성에 대해 큰 기대를 품지 않습니다. 합리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보가 완전하지 않고 정보 처리능력 또한 제한적이기 떄문입니다. 사람은 이런 제한성 내에서 최대한으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웹을 뒤져도 정말 진짜로 낮은 가격을 찾아내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우리가 용팔이에게 번번히 당하고 살았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합리성을 가정한 신고전학파의 최적화(optimisation)이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개인이 합리적이지 못하면 당연히 개인의 효용은 극대화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때로는 개인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최적화를 하지 않습니다. 칼퇴 하고 싶어도 우리는 칼퇴를 하지 못하며 회식 가서 술 먹기 싫은데 억지로 술을 먹고 노래방에서 억지로 노래를 부르죠. 이것 말고도 체면 차리며 못하는 온갖 행동들을 비롯하여 일부러 최적화를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 경우 합리성이라는 도구는 경제적 분석에 그렇게 큰 유용성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5) (재)생산성((Re)producibliity): 재생산이란 용어를 많이 들어 봤으면 여러분의 사상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건 고전학파 그리고 고전학파를 계승한 마르크스의 관점입니다. 고전학파는 경제문제가 희소성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재생산이었죠. 즉, 현재의 경제상태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 혹은 그대로 유지할 건가 아니면 있는 것도 유지를 못할 정도(축소재생산)인가가 고전학파가 주로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재생산의 가능성은 '잉여'(여러분이 아닙니다)로 결정됩니다. 잉여(surplus)란 현재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외한 생산물을 의미합니다. 잉여를 어떻게 쓰느냐(즉 소비하느냐 투자하느냐)에 따라 이후 경제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경제학의 문제는 희소성에 있다는 것은 신고전학파의 견해이지만 포스트 케인지언은 이 희소성의 문제는 '토지'에만 관련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토지는 생산할 수 있는게 아니므로 희소성이 존재하지만, 자본과 노동은 지속적으로 재생산하여 그 크기를 키울 수 있으므로 자본과 노동의 분석에 있어서는 재생산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원래 고전학파는 토지에만 희소성 개념을 적용시키고 한계의 개념 또한 토지에만 적용시켰으나 이를 무분별하게 자본과 노동에 확장시켰다고 포스트 케인지언은 비판합니다.

(6) 불확실성(Uncertainty): 불확실성은 케인즈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고전학파는 케인즈의 거시경제이론을 취사선택하면서 불확실성을 버리고 나머지를 취했습니다. 신고전학파에서의 불확실성이란 위험(Risk)를 의미합니다. 재무관리를 공부하셨으면 아시겠지만 이런 위험은 주로 확률로 표현되고 평균적으로 보면 예측이 가능하죠. 이를 ergodic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은 불확실성이란 리스크와는 다르고, 확률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죠.(케인즈는 그의 케임브리지 Fellowship 논문으로 확률론 논문을 낼 정도로 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를 non-ergodic하다고 합니다. 계량경제학도 ergodic하지 않으면 즉, 평균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면 쓸모가 없습니다.(케인즈는 이러한 측면에서 계량경제학에 별로 신뢰를 보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계량경제학자가 케인즈 자신의 이론을 계량 모델로 만들어 가져 오자 호되게 비판했지만 또한 그를 후원하며 케인즈가 편집장으로 있던 학술지에 그 논문을 등재시켜줍니다) 예측은 과거에 있던 일이 미래에 반복 될 때나 가능한 법이지요. 더 나아가 포스트 케인지언은 예측은 경제학의 최종 목표가 아니며 과거에 대한 분석을 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패턴을 찾아내고 그 패턴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말하는 겅이지요.

(7) 예측이 아닌 설명(Explanation, not Prediction): (6)에서 한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경제학은 주제 넘게 함부로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다만 Stylised Facts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취기에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이해하실련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럼 안녕히.

2013년 7월 6일 토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2)-Introduction: 주류경제학의 10계명

안녕하세요 영 오랫동안 찾아 뵙지 못하고 파레토 같은 뻘글이나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단 서두 부분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비주류 경제학이라고 하니 주류 경제학의 기본적인 논의 구조에 대해서는 좀 알 필요가 있겠죠? 그래서 수업 첫번째에서 주류 경제학의 기본적인 가정들과 학문적 방법론 등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 중에서 "경제학의 10대 원리"라고 맨큐가 소개한 일종의 10계명에 대해서 짚어 보겠습니다. 이는 주류 경제학이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일단 10계명의 내용을 보죠. 경제학 전공자나 경제학 원론 수준의 수업을 들으신 분은 한 번 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감히 모세의 10계명에 빗댄 경제학의 10대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들은 언제나 Tradeoffs 에 직면한다.

트레이드오프라는 말이 좀 번역이 쉽지 않은데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저번에 포스팅 한 적 있는 파레토의 공헌 중 하나인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과 관계가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파레토 최적이란 효율성이 최고로 달성된 상황을 말하며 그 상황에서는 어느 한 가지를 더 얻으려면 나머지 중 하나는 포기해야합니다. 즉, 파이를 N빵 해서 나눴는데 내가 더 먹고 싶으면 옆 사람 접시에 있는 파이를 강탈해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즉, 이는 주류경제학이 효율성을 기본 전제로 함을 의미합니다.

2. 어떤 것의 비용은 그 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무엇이다. 

말이 웃긴 것 같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는 다음의 예로 설명 가능합니다. 내일이 시험이라 미치겠는데 시간도 없는데 과목이 두 개입니다. 그러면 둘 중 하나에 몰빵을 하든가 둘 다 조금씩 보든가 해야합니다. 그런데 한 과목이 전공이고 다른 한 과목이 교양이라 해봅시다. 그러면 교양을 포기하고 전공을 공부하겠죠?(가끔 이런 상황에서 교양을 붙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리 하세요) 그렇다면 전공 학점의 비용은 교양과목을 공부 해야 했던 시간, 다시 말하면 교양과목의 학점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회비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회계에서는 기회비용을 인정하지 않죠. 회계적 비용은... 음... 뭐 유형자산손상차손이라든가 당기손익인식금융자산평가손실이라든가 그런게 있는데... 이건 모두 기회비용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대강 말하자면 돈 나가고 들어 온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기회비용은 그렇지 않죠. 그 선택을 위해 포기한 것들 중 가장 가치가 큰 것을 비용에 더해 주어야 합니다.

3. 합리적인 사람은 한계적(marginal)으로 판단한다.

'한계적'이란 말은 경제학에서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한계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는 곧 미분값을 의미합니다. 즉, 독립변수가 아주 작은 정도로 변화하였을 때 종속변수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여태까지 해왔던 것은 제껴 두고 앞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만을 판단 근거로 삼겠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수학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경제문제들에 대해서 최적화(optimalisation)을 하게 되면 미분개념이 당연히 쓰이게 되고 이 때 한계라는 개념은 당연히 등장하게 됩니다.

4. 사람들은 유인(incentives)에 반응한다.

여기서 말하는 유인이란 금전적 인센티브를 말합니다. 세상에 금전적 인센티브 말고 무슨 인센티브가 있을까요... 사실 사람들은 꼭 인센티브, 특히 금전적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체면치레 하느라 마지막 남은 탕수육을 먹지도 못하고, 완전 비재화에 사람 머리만 아프게 만드는 술을 강권해서 와장창 먹고 토하고 또 먹고 그러고 다음날 아침에 죽을 것 같고 그러지 않습니까? 사실 인센티브라는 건 그렇게 딱 정할 수도 없는 개념이거니와 사람의 합리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 인센티브의 역할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합리성이라는게 반드시 금전적인 부분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다차원적인 것도 고려할 수 있죠.

5. (자발적)교환은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자유무역협정과 누구누구 같은 시장지상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자들의 논거가 되는 원리입니다. 교환을 하면 모두가 그 교환을 통해 이익을 본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도대체 나아진다는 것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여기서 효용 개념이 등장합니다. 즉, 교환으로 효용이 증가한다는 것이지요.

6. 시장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 

많은 경제학자에게 시장은 '전지전능한 우리 주'와 같은 위상을 지닙니다. 하지만 사회과학에서 전지전능한 뭐 이런 것을 말하면 안되므로 '대부분'이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주류경제학 이론을 놓고 봤을 때, 대부분의 경우 경쟁적 시장이 경제의 효율성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효율성이 뒷받침 되었을 때, 시장은 경제활동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죠. 그러면 시장 말고 뭐가 있냐고요? 정부가 있습니다. 위대한 당중앙과 중앙계획당국의 생산계획을 받들어 로력을 다해서 목표치를 생산하는 계획경제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복지국가처럼 시장에 간섭하는 정부로서 존재할 수도 있죠. 하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에 좀 더 우선 순위를 둡니다.

7. 정부는 때때로 시장의 결과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을 주류 경제학이 떼로 부정하고 그러진 않습니다. 정부가 없으면 당장 도둑은 누가 잡고 댓글은 누가 달며 재벌 회장은 누가 구속하겠습니까?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주류 경제학에서는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장실패 즉, 시장이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만 정부가 개입하며 그 개입의 부작용도 최소화시키기를 원하지요. 시장이 효율적인 결과를 내지 않는 경우는 독과점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쓰레기 같은 통화 품질에 요금만 더럽게 비싼 이동통신 서비스라든가 그런 것 말이죠.

8. 한 나라의 삶의 수준은 그 나라의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능력에 달려 있다.

뭐 방글라데시, 네팔 이런 곳의 사람들도 끝내주게 행복하게 살지 모르지만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으며 월급의 구원을 받고 신용카드의 유혹을 받는 우리로서는 돈을 잘 버는게 아무래도 삶의 수준을 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GDP라는 총계적인 수치로서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실시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GDP는 문제가 많은 개념입니다. 환경오염의 정화 비용도 GDP에 들어 가서 국민소득을 높일 수 있고 막 4대강, 한식세계화 사업 이런 것도 GDP를 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양적으로는 좋은 통계치일 수는 있지만 질적으로는 문제가 있고 또한 양적으로도 환경파괴와 같은 측면은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9. 정부가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하면 물가는 상승한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관한 주류 경제학의 입장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언제나 화폐적인 현상, 그러니까 화폐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화폐가 과잉발행 되었을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차 대전 직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짐바브웨(너를 1조 짐바브웨 달러만큼 좋아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후에 설명하겠습니다.

10. 사회는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과 실업률 간에 상충관계를 갖는다.

마지막 원리는 거시경제정책의 측면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단기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이 떨어지고 물가가 하락하면 실업률이 상승한다고 합니다. 이는 필립스 커브라는 개념으로 나타나지요. 단기라는 단서가 붙은 것을 보면 장기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기에는 주류경제학적 입장에서는 완전고용이 달성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단기적으로도 상충관계가 없을 수 있고 장기에서도 완전고용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 중 하나가 완전고용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장기에서도 시장은 완전고용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상으로 맨큐의 경제학의 10대 원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경제학자들 간의 일종의 "합의된 견해"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약한 노동조합
2. 노동시장에서의 더 큰 탄력성(탄력성이란 임금이 노동 수요 공급에 신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임금제약(최저임금제도를 반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정부서비스의 감축과 세율의 인하
5. 재정적자의 준(quasi)제거
6. 공공지출의 제한
7. 민영화
8. 규제완화
9. 독립적 중앙은행(인플레이션 통제에 있어서의 독립성입니다)

저는 위에서 9번에 일부 찬성하는 것을 빼고는 전부 반대하지만 뭐 그렇다고 합니다. 뉴스와 경제신문, 일부 신문의 사설과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앵무새처럼 나오는 소리를 모아 놓은 듯합니다.

다음 번 포스팅 때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기본적 방법론들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