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5)-Production

안녕하세요. 원래 이 블로그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었는데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시덥잖은 뻘글로 지면을 많이 채워넣었습니다. 이제 로스쿨 입시도 모두 끝났고 본연의 목적에 좀더 충실하기 위해 연재를 재개할까 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 연재를 할 때에는 꼭 술이 들어가야 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오늘 하는 부분은 굉장히 기술적이라면 기술적인 부분입니다.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이론'입니다. 생산이론이란 대개 기업의 생산함수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기업의 생산함수란 투입요소에 따른 산출량을 나타내는 함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보통 투입요소로 노동과 자본을 듭니다. 각각 알파벳으로 L과 K라 하죠. 자본(capital)을 K로 나타내는 이유는 아마 소비(consumption)과 차이를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어로 자본은 Kapital이죠.

신고전학파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로 생각하는 생산요소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동, 자본, 토지 입니다. 보통 토지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지대"부분에서 다루게 됩니다. 토지는 주어진 수량만이 존재하므로 생산량에 따라 그 투입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고정되어 있지요. 그래서 분석 대상으로 유의미한 것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입니다. 자본의 가격은 이자이며 노동의 가격은 임금이고 토지의 가격은 지대입니다. 그리고 각 생산요소의 가격은 생산요소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므로 생산요소가 생산에 기여하는 만큼 주어지게 됩니다. 즉 노동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인 임금은 노동이 생산물에 기여한 만큼 책정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신고전학파 이론에서는 분배문제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리게 됩니다. 각 생산요소의 제공자인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는 자신이 생산에 기여한 몫만큼 받아가면 되는 것이고 이에 대해 신고전학파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는 우리들이 잘 알 것입니다.

신고전학파의 생산함수에서 기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비용극소화+이윤극대화입니다. 흔히 기업이 비용만 극소화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기업의 목표는 이윤극대화입니다. 이윤=수입-비용 이지요. 둘 사이의 차이가 크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생산요소의 수량과 가격은 반비례합니다. 희소한 생산요소는 그 가격을 더 받게 되는 것이지요. 노동가능 인구가 적으면 임금은 올라가고 자본이 희소한 곳에서는 이자율이 높아지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 경제 발전기인 60~70년대 은행의 공식 이자율은 낮았지만 이는 관치금융으로 인한 것이었고 실제 돈을 빌릴 수 있었던 사채 시장의 이자율은 50%였습니다. 자본이 희소했던 탓이지요. 때문에 은행 문턱이 천국 문턱보다 높다는 말이 나왔고요.

신고전학파의 생산함수는 기업이 노동과 자본의 비율(K/L)을 이 생산요소 가격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생산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신고전학파의 가정에 따르면 생산기술은 자본과 노동의 가격의 변동에 따라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언제든지 바꾸어가며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자본과 노동이 대체 가능한 것이지요. 노동의 가격인 임금이 비싸고 자본의 가격인 이자율이 싸면 노동 고용을 줄이고 자본 고용을 늘리면 됩니다. 공장을 기계화 하는 것이지요. 반대의 경우엔 거꾸로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학파는 이에 대해 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씁니다. 한번 정한 생산기술, 다시 말하자면 노동과 자본의 투입비율은 어느 정도까지 바꾸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공정은 상당히 기술집약적인데 거기에 자본 가격이 비싸졌다고 사람으로 때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산업이 이와 같은 형태를 가졌는데 맘대로 생산기술을 바꾸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주장입니다. 특히 개별기업에 대해서는 이런 가정이 적용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이론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살펴보겠습니다.

(1)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러한 '대체'에 별로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비율이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시작하지요. 이 경우 노동과 자본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자본이 일정하게 존재할 때 노동 고용을 아무리 늘려도 생산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라인이 한정되어 있는데 아무리 많은 기술자를 투입해도 자동차 생산량이 늘지 않는 것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포스트 케인지언은 자율적 수요(autonomous demand)에 중점을 둡니다. 거시경제에서 수요란 소비+투자를 의미합니다. 소비재 수요와 자본재 수요를 말하는 것이지요.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 소비는 소득에 의해 결정되고 투자는 이자율의 함수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자율과 소득 이외에도 거시경제에서의 수요측면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경제 외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3)no use of aggregated capital: 이는 자본 총계를 표시하는 신고전학파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본을 단일한 수량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는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를 여기에 소개하는 것만 해도 많은 지면을 잡아먹을 것이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경제학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니 궁금하신 분은 찾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소위 "자본논쟁"이라고 합니다. 자본을 단일한 수량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가정 아래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다부문 모형을 사용합니다. 즉 각각의 자본재도 경제 내에서의 하나의 생산물로 보아 행렬 모형(연립방정식 모형)으로 만들어 각 재화가 투입되어 다른 재화를 만드는 모형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행렬 모형을 표현하자면 복잡하니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한 재화의 가치=투입된 모든 재화의 가치+잉여(=신투자+소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상품의 가치 내에는 그 상품을 만드느라 사용된 다른 상품(자본재)의 가치와 우리가 투입한 상품의 가치 이상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투입한 상품의 가치 이상의 가치 즉, 잉여는 우리가 소비해 버리거나 투자하는 형태로 실현되는 것입니다.(이렇게 말해도 어렵네요...)

연립방정식 모형이 되면 수요 공급함수로 어떤 상품의 가격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요 공급함수란 단순히 그 상품의 수량과 가격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인데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모형을 따른다면 가격=생산에 투입된 해당 재화와 다른 재화의 가치+잉여이므로 단순한 수량-가격 관계로 표현할 수 없게 되죠. 그래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수량-가격 관계의 수요공급함수를 쓰지 않습니다. 다만 공급과 수요의 개념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4) 각각의 상품에 대해서 한 상품의 총 산출량=중간재로 사용된 상품량+최종재로 사용된 상품량 으로 표시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이지요.

(5) 중간재의 가치+부가가치=생산물의 가치. 이도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6) 산출량과 가격은 수요 공급 함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많은 외부요인을 고려해야한다고 보기 때문에 수요 공급 함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느 가격에 해당하는 어떤 수량은 그 시점에서 경제적, 경제외적 상황에 의해 우연히 결정된 것이지요.

뭔가 신고전학파 생산이론과 대비하여 설명하였어야 했는데 그러면 너무 주저리주저리 길어질 것 같아 일단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생산이론만을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수학적 appendix가 있으나 굳이 써야할 것 같지 않아 생략하였습니다. 오늘도 짧지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만.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Shoe Collector Nikolay

으어 벌써 1차 발표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내일 이 시간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 궁금하네요. 오늘 글은 좀 가벼운 주제입니다. 신발 수집이 취미인 저의 의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요. 긴장 되서 잠도 안 오는데 가볍게 쓸까 합니다.

신발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요 초등학생 때부터 모종의 집착(?) 같은게 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레고도 사야했고 게임 씨디도 모아야 했고 더더군다나 부모님은 신발이 닳기 전엔 안 사주시는게 당연했기 때문에 그냥 신고 있던 신발이 다 닳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아마 처음으로 나이키에서 나오는 농구화를 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땐 기분이 무척 좋았죠. 그리고 조던 시리즈로는 처음으로 에어조던 9을 샀습니다. 흰검이었고 얼마 전까지 거의 누더기가 된 채로 신발장에 있다가 버려진 것 같네요. 에어조던 9 흰검은 다음과 같은 모양입니다.
sneakersection.com에서 이미지 발췌
 
여튼 이걸 잘 신고 다니다가 저도 중학교 때부터는 이래저래 돈을 모으게 되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배려로 스스로 통장관리를 하게 되면서 집과 독립되어서 따로 주머니를 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통장 비밀번호를 부모님 모르게 해놓고 현금 카드를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바로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썼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아마 옥션에서 폼포짓 프로 블루를 샀던 것 같아요.














폼포짓 블루는 당시 학교에 신고 다니기에 조금 버거울 정도로 화려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 옥션은 신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짭션이라고 불리우며 멸시당하지만 옛날만 해도 농구화를 구하려면 옥션에서 구하거나 혹은 카페의 중고 사고팔기 게시판이 전부였습니다. 옥션만 해도 에스크로 거래로 신뢰할 수 있었지만 중고 장터는 정말 판매자의 신용으로 거래하는 것 말고는 없었죠. 전 여태껏 한번도 사기 당한 적이 없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컬렉션은 좀더 늘어났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에게는 조던 18.5를 받고 외할머니가 르브론 2를 사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르브론 2는 예쁜데다가 발도 편해서 몇 년 전에 다른 색으로 또 사서 신고 있습니다.



당시 농구 경기를 보면 상당수의 선수가 르브론 2를 신을 정도로 인기가 좋아서 "국민 농구화"라 불리곤 했습니다. 에어도 물컹물컹 좋아서 엄청 신었는데 결국 에어가 터져 버려서 주저앉아서 버리게 되었죠. 그래서 그 안타까움에 대학교에 와서 다시 사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샀던 것은 당시 신인이었던 카멜로 앤써니의 시그네이쳐 슈즈(한 선수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신발)인 멜로 1.5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갑피에 라인이 예쁜 신발이었죠.
 
멜로 1.5는 발도 편하고 그랬는데 이후 대학 들어 와서 자금 사정으로 팔아버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기 팬던트도 걸려 있는데 그 팬던트가 아마 어딘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무언가 테마를 정하거나 라인을 정해서 모아야 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예쁘면 사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했죠. 그러다 보니 별의별 쓸 데 없는 것도 사고 지금은 애물단지가 된 신발들은 대개 고등학교~대학 초년생 시절, 돈이 많지 않았을 때 계획성 없이 샀던 것들입니다. 그 때는 정말 왜 그랬는지 후회되네요. 조던 8을 헐값에 살 수 있는데도 옆에 있던 VC4(빈스카터의 시그네이쳐 모델)을 사질 않나...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다루는 돈의 액수가 좀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세뱃돈은 물론이고 용돈부터 장학금을 받을 경우 장학금의 부스러기까지 돈이 쏠쏠하게 모였죠. 전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광화문 교보에 달려가 신작 게임을 사는 한 편 호시탐탐 신발을 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빈발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신발을 "모은다"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나타내셨고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신발을 사오는 날엔 부모님하고 말도 안 할 정도였죠.
 
대학교 때까지 부모님과의 갈등은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시간이 싫었습니다. 전 눈치 보면서 신발 상자를 집에 가져오고 부모님은 화를 버럭 내시고 전 또 거기에 대들고... 어떻게 해결되었냐고요? 간단했습니다. 전혀 부모님이 상관할 수 없는 돈으로 신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장학금, 과외비, 월급... 결국 부모님은 제가 대학교 2학년이 지나면서 백기를 드셨고 신발 모으는 것에 대해 크게 나무라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취미"로 인정 받았달까요? 이제는 주로 "공간"이 문제가 됩니다. 사실 수납 공간이 좀 부족하긴 하거든요... 나무로 따로 신발장을 짜든지 해야하는데 집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초년생까지는 "남들 신는게 부러워서"산 신발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획없이 막 샀던 거죠. 그 때 산 것 중에 그래도 잘 샀다고 생각 되는 신발이 있습니다. 줌 20-5-5인데 르브론의 경기 성적을 나타낸 거라는데 까먹었네요.
 
사실 농구화의 치명적 단점이 있는데 "통풍"입니다. 여름엔 땀이 좀 차죠. 근데 이 모델은 통풍이 워낙 잘 되서 땀이 안 차는데다가 착용감도 좋았습니다. 결국 다른 색깔로 똑같은 모델을 또 샀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신발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컬렉션을 조던으로 시작한게 아니라 르브론으로 시작했네요. 르브론 2부터 꾸준히 사서 3, 4, 5, 6, 8, 9, 10까지 사모았습니다. 7과 11은 제 취향과 안 맞아 안 샀지만요. 당시 조던은 뭐가 뭔지도 몰랐고 그나마 매년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는 르브론 시리즈가 접근성이 좋았습니다. 조던은 당시도 리트로(재발매)하던 시절이라 정확하게 언제 나오고 어떤 모델이 나오는지 모르면 모으기 힘들었죠. 그래서 조던은 제가 풋셀에 가입하고 대학교 들어와 돈을 스스로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모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초기 컬렉터 때의 얘기입니다. 다음 편에선 제 소장품 사진과 대학교 시절 모았던 스토리 등등으로 찾아뵙겠습니다.
 



2013년 10월 11일 금요일

동양 사태를 보며 든 감상

안녕하세요 니콜라이입니다. 로스쿨 자기소개서와 원서질이 이제서야 끝났네요. 그래서 이제 글을 좀 더 쓸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확답은 못드립니다.)

최근에 금융 관련 이슈가 좀 있었네요. 동양증권 관련해서 이슈가 있었는데 영 사실 관계 파악이 쉽지 않네요. 여기 저기 말이 다 다르고 동양증권 측에서도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계열사의 부실 채권을 잘 포장해서 팔았다는 얘기도 있고 그렇네요.

제 생각은 사실 항상 일관적인데 "구조를 모르는 금융상품은 건들지 말라"입니다. 동양그룹 자체의 재무구조가 올해 들어 상당히 악화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추이를 계속 지켜볼 능력이나 시간 혹은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지분상품(주식)이든 채무상품(채권 혹은 어음)이든 사면 안 되는 것이지요. 좀 더 높은 이자를 주거나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해서 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증권사들이 이런 상품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좋은 양 포장해서 파는 건 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저로서는 기본적인 금융교육 혹은 소양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데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조금만 알아도 건드리지 않을 상품들을 사람들은 너무 많이 건드립니다. 키코 사태도 그랬죠. 물론 기업들도 환차익을 노리고 파생상품의 수익성에 매료 되어 샀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 상품이 은행한테 기본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 상품 구조를 제대로 모르고 덥석 은행의 구매 권유 혹은 꺾어팔기 등에 의해 사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상품 판매와 구매에 있어서 은행이나 증권사가 판매시 지켜야 할 법적 절차를 모두 지켰다면 사실 할 말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상으로 지식을 갖추고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는 투자자의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따라서 정말 기본적인 금융교육을 의무교육부터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경제/금융 원칙이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높은 위험에 높은 수익이 아니라 낮은 위험에 높은 수익이라면 그건 둘 중 하나입니다. 첫째, 사기입니다. 둘째, 제도나 기타 등등의 원인에 기인하는 지대(rent)로 인한 차익거래(arbitrage)인 경우입니다. 따라서 수익이 높다면 반드시 그 앞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게 사기는 아닐까? 이게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것만 잘 지켜도 사실 금융이나 기타 등등 투자로 인한 큰 위험은 비껴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시스템 리스크는 헷지(위험회피) 되지 않는게 함정이지만요)

동양증권 사태로 인해 우량 회사채 가격이 내려간다는데 만약 그 회사채 발행 기업의 재무구조가 우량하고 현금흐름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를 상환할 능력이 있다면 가격이 정상화되지 않을까 싶네요. 금융사들에 연쇄 위기가 와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은 수익률 구조(=무위험이자율+시장리스크*시장민감도+오차항(error term))에서 통계적으로 잡아내기 힘든 일종의 잡음인 '오차항'에 해당할 것 같아서 곧 수익률이 평균으로 회귀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금융 관련 썰을 풀었는데 전 원체 무식해서 사실 주식도 안 건드리고 펀드도 국공채와 우량채권으로 구성된 펀드 들고 그럽니다. 첫째는 제가 워낙 게을러서 투자 대상 회사의 재무제표와 투자보고서 같은 걸 보질 않아서 그렇고요 둘째는 하다가 한번 적은 돈이지만 확 말아 먹은 적이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도 주식은 안 할 생각입니다. 사실 금융 쪽도 이미 발행된 주식과 채권의 유통을 담당하는 2차 시장보다는 기업이 직접 자금을 조달해서 주식과 채권을 신규로 발행하는 발행시장(1차 시장)에도 관심이 많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동양 사태로 평생 모은 소중한 돈을 잃게 되신 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사태가 조속히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랍니다.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전문가로서의 책무

안녕하세요 니콜라이입니다. 추석 때 살 안 찌려고 발악을 하는데 참 힘들군요. 여러분 모두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살은 안 찌는 그런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본인의 텝스 시험이 끝났습니다. 잘 봤던 못 봤던 관계 없습니다. 끝났다는데 방점을 찍어야죠. 텝스 시험 같은 걸 대학교 입시에 쓰다니 그건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대학원 입시에 쓰는 것도 야만입니다. 영어에 대한 증오만 늘어가는군요.

각설하고 오늘은 자기소개서에 쓰다가 여기에도 좀 쓰고 싶은 주제를 쓰고 싶어서 블로그에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전문가의 책무'입니다.

트위터 하시는 분은 많이 느끼시겠지만 의사분들이 현행 의료체계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그 개선방안이나 문제점에 대해 토로하시는 것을 보셨을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제가 가끔 감사하다가 징징대는 것도 보셨을 것이고 요즘 로스쿨 나온 변호사가 7급 공무원으로 채용된다는 소식도 들으셨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느끼기엔 이 모든 것의 가운데에는 '적정 수입'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입니다. 즉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벌어가는 걸 우리 사회가 보장 혹은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실 노동시장론적 관점에서 본다면(제가 말하는 노동시장론은 꼭 신고전학파적 시각은 아닙니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해당 직종의 임금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도 진입장벽이나 면허 등 해당 노동시장에 시장 참여자들이 진입하는 것이 자유로운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소위 전문가, 전문직의 경우에는 진입장벽이나 국가에서 면허를 발행함으로써 시장 참여가 제한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시장 참여가 이러한 제한을 받게 되면 경제학에서는 지대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공급이 제한되므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게 되고 가격은 완전경쟁 상황, 즉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수준보다 올라가게 되죠. 따라서 해당 전문직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 또한 올라가게 됩니다. 여태까지 많은 전문직이 고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지대가 있었죠.

그러나 요즘 들어 각종 고시 합격자수가 크게 늘어나고 의대 등의 정원이 늘어나면서 아예 지대를 없애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전문직의 서비스의 가격은 낮추면서 소비자에게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하에서 말이죠. 그러나 과연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는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까요?

면허나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해당 전문직이 수행하는 일이 그 정도의 자격 요건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해부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의사면허를 줄 수 없고 회계이론을 모르는 사람이 회계감사를 할 수는 없죠. 그런데 만약 낮은 서비스 가격과 품질 개선을 이유로 많은 수의 면허를 발급한다고 하면 개별 전문가가 얻을 수 있는 수입은 낮아집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의 움직임은 하나입니다. 박리다매입니다. 즉 더 많은 양의 서비스를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서비스의 품질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의사의 경우는 박리다매를 하게 되면 환자를 더 많이, 대충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죠. 너무 적나라할지 모르지만 전문가는 받은 돈에 비례해서 그 정도 품질의 서비스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공장이 아니기 때문이죠. 전문가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전문가는 최대한 수입의 감소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일을 떠맡으면서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전문가 '조직'이 되는 경우 조직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더더욱 적정 수준의 수입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전문가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계감사 과정에서 요즘 문제시 되는 덤핑은 좀더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이건 여담이긴 하지만 감사를 받는 피감사인이 감사 수임료에 대한 거의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데다가 회계사의 숫자도 많이 증가하였고 또 자유수임계약제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회계법인들이 여러 사업 분야에 손을 대고 이전에는 손 대지 않았던 정부 용역에까지 입찰을 한다는 기사를 보면 회계시장 또한 전문가의 증가로 인한 지대감소로 문제를 겪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지대를 보장해줄 근거가 있냐는 반론에 부딪힐 수 있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전문가가 지대를 보장받고 적정수입을 챙기는 대신에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법제도의 정비를 통해서도 책무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것보다 전문가의 법률적 책임을 강화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대신에 제도적으로 지대를 보장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격은 어느 정도 높더라도 확실히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는 전문가 집단 스스로가 주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마음은 없으면서 자꾸만 지대 운운하며 정부와 사회가 '내가 이만큼 공부해서 '쯩'도 갖고 있는데 왜 돈은 못벌게 하냐'고 찡찡거리기만 한다면 그건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기생충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심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대는 일단 사회의 경제적 효율을 저하시키는 요인입니다. 지대를 추구하게 되면 사회 전체 구성원의 몫으로 돌아갈 후생이 지대를 가져가는 집단에게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문가가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그 지대를 가져가서 사회가 얻는 손실을 사회적 책무를 다해 벌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사회적 책무를 모두 다하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함과 동시에 서비스 품질 저하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사회에 합리적인 지대를 요구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 같은 생각을 한번 썰로 풀어 봤습니다. 이게 다 제가 먹고 살기 힘들어 져서... 는 아니고요, 요새 들어 지나치게 의료 시장 등에 있어서 소비자와 공급자, 그리고 정부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아서 한 번 써본 글이었습니다. 좋은 밤 보내시고 송편은 탄수화물 덩어리니 적당히 드시고 고기로 배울 채우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2013년 9월 1일 일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4)-Key Proposition

여러분 안녕하세요. 태만하기 이를 데 없군요 제가 생각해도... 원래 방학 기간 내로 블로그에 연재를 끝내려 했으나 생업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법학적성시험과 텝스를 봤습니다) 하면서 계속 미뤘네요. 그래도 봐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은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핵심 명제라고 할 만한 것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도 이전의 세계관과 같이 기존의 신고전학파 주류경제학과는 많이 다릅니다.

1) The economy is a historical process.(시간은 비가역적이다.)
-이 가정은 계량경제학적 방법론하고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량경제학은 통계적 방법에 의거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어진 독립변수가 같다면 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즉 함수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러한 시간 개념을 거부합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 고스란히 다시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신고전학파는 Logical time 즉, 논리적 시간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했을 때, 원인이 같다면 결과도 같겠지요.

2) We are in an uncertain world, and here expectations have significant impact.
-불확실성이란 케인즈의 경제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 세계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기대는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신고전학파의 합리적 기대와는 다른 종류의 기대입니다. 일종의 '관행(conven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관행에 따라 어느 정도 미래까지 행동하게 됩니다.

3) Institutions are important: megacorp, trade unions, the central government, the banking system, the international environment, etc.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제도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의 기업은 단순히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시장에서 독과점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화폐도 신고전학파의 개념처럼 거래의 매개가 아니라 화폐라는 일종의 제도로서 보면서 접근합니다. 때문에 화폐는 가치 저장수단으로서 기능하며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도라고 봅니다.

4)Capitalism is a class-divided society.
-마르크시스트들이 좋아할 명제입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기존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경제주체들을 동질적으로(homogeneously) 보는 관점을 거부합니다. 엄연히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소비-저축 이론을 다룰 때 각 계급의 소비성향과 저축성향을 다르게 설정해 줌으로써 결론에 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5) Economic agents commit themselves to contract denominated in money.
-뭔가 부연 설명하기에 양이 많은 것 같진 않습니다만, 경제 주체들은 거래를 함에 있어서 화폐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6) Labour is different from peanuts.
-네 노동은 당연히 땅콩과는 다릅니다. 같을 수가 있나요. 하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이나 땅콩이나 모두 똑같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입니다. 노동력의 가격은 임금이고 땅콩의 가격은 상품 가격으로서 표시될 뿐입니다.(마르크시스트들의 노동과 노동력의 차이에 대한 구분은 알고 있습니다만 섞어 쓰겠습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 둘을 같은 층위에서 분석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사실 이 주제는 저번 학기 내내 제 머릿속에서 떠돌았던 생각입니다. 노사관계론에서 경제사회학적 관점과 제도학파적 관점에서 노동 시장과 노사관계에 대해 다룬 이후로 노동은 분명히 다른 commodity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도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노사관계론에서는 노동이 특수한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환경에서 거래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고전학파적 한계주의 이론으로 접근하기 힘들다고 봅니다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를 재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이에 대해 하단에 상술하겠습니다.

노동시장의 작동에 대해서 신고전학파는 한계이론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즉 한계생산물의 시장가치가 노동자가 받아야할 임금이라는 뜻이지요. 쉽게 말하면 어떠한 물건을 생산했을 때 그 물건이 시장에서 평가되고 그 평가된 가격이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 아래서는 생산과 분배 이론이 통합됩니다. 다시 말해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과정과 판매 과정에서 정해지고 그에 따라 임금을 주기만 하면 되므로 별도의 분배이론을 발전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윤리학적 고찰을 통해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주님의 것은 주님에게'를 따질 껀수가 안 나오는 것이지요. 때문에 경제학에서 한계주의 학파 등장 이후 제 생각으로는 분배 정의에 대한 논의가 한참 후퇴했다고 봅니다. 윤리학적 요소도 많이 제거 되었고요.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한계주의의 등장 배경은 자세하게 서술할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재화의 희소성' 개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재화가 희소하니 막 한계가 오고 그에 따라 아껴 써야한다고 이해하시면 됩...(경제학도들은 알아서 걸러 들어 주세요) 여튼 노동이나 자본, 토지 모두 희소하니 주류 경제학(한계주의 경제학)에서는 막 아껴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희소성은 토지에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고 따라서 한계주의적 분석은 토지만 해당된다고 봅니다. 실제로 고전학파들이 한계적 방법론을 최초로 사용할 때는 토지에만 국한 되었습니다. 토지는 아시다시피 그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땅 좁은 나라는 한국 같이 토지의 가격인 지대가 터무니 없이 비쌀 수도 있습니다.(그보다는 역시 재테크 때문에...) 여기서 토지란 단순히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생할 수 없는 거의 모든 천연자원을 토지로 보통 퉁쳐서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동과 자본은 재생할 수 있을까요? 네 재생이 됩니다. 노동의 재생(혹은 재생산)은 애를 막 낳아서...(진짜 맞습니다) 하고 자본의 재생산은 자본이 투하 되어 자본재를 생산하고 그 자본재가 다시 자본을 축적하고 이러면서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재생산은 그 규모가 더 커지는 확대재생산과 그 반대인 축소재생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과 자본의 재생산성 때문에 희소성이란 개념에 기반한 한계주의적 분석은 노동과 자본의 분석에 쓰일 수 없다는 것이 포스트 케인지언의 입장입니다. 반면 제도주의적, 경제사회학적 노사관계론에서는 노동의 가격인 임금이 워낙 다른 많은 요소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에 신고전학파의 한계주의적 분석을 거부하는 것이고요.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서술하겠습니다.

저의 난잡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부지런히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럼 이만.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3)-Methodology: World View

제가 바쁜지라 연재한다고 해놓고 너무 뜸하네요. 술기운을 빌려 글을 써볼까 합니다. 술 때문에 글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잘 정리된 필기를 보고 올리고 있거든요.

주류경제학 그러니까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들은 방법론 자체에서 차이가 납니다. 세계를 바라보고 이를 분석하는 도구가 다른 것이지요.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과 신고전학파의 방법론적 차이에 대해서 기술하겠습니다.

1. 세계관(World View)

(1) 현실주의(Realism):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말은 경제이론의 가정들과 이론에 깔려 있는 구조들이 현실적이라는 뜻입니다. 즉, 주류경제학과 달리 비합리적인 소비자를 가정하며 불완전경쟁에 기반한 경제분석을 추구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신고전학파의 방법론은 도구주의(instrumentalism)입니다. 도구주의에 따르면 가정은 추상적이어도 되고 이론의 예측력만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2) 개방체계(Open System): 포스트 케인지언의 입장에서 경제란 개방된 체계이고 이에 따른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바벨탑(바벨탑으로 인해 언어가 분기했듯이 경제이론도 다를 수 있따)의 우화와 horse for courses(코스에 따른 적절한 말(馬))의 비유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경제체제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는 것을 수용하고 다원론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이론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포스트 케인지언은 역사적으로 비가역적(irreversible)이고 따라서 현상들은 경로의존적(path-dependent)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신고전학파의 견해는 당연히 폐쇄체계(closed system)일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 이론은 하나의 체계 내에서 완벽하게 적용되죠.

(3) Organism: Organism은 뭐라 번역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직주의도 아니겠고... 교수님이 모든 수업자료를 영문으로 주시는지라 가끔 애로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도 영국식 영어... 여튼 organism에 따르면 개체는 다른 개체와의 관계속에서 행동하므로 분석단위는 개별 개체가 아니라 개체들의 집합이 되어야 합니다. 즉 전체로부터 출발하여 개별적인 단위들을 분석하는 방법이지요. 마르크시즘도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경제학적인 용어로는 미시경제학의 거시적 기초(Macro Foundation of Microeconomics)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제도를 분석단위로 삼게 되는데 이에는 계급, 정부, 기업 등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신고전학파의 방법론은 개체주의입니다. 이는 개별 단위로부터 출발하여 전체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거시경제학의 미시적 기초로 불리웁니다. 요즘 거시경제학의 최신이론들은 미시적 최적화를 통해 집합적인 경제주체들이 어떤 행동을 분석하는 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죠.

(4)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합리성에 대해 큰 기대를 품지 않습니다. 합리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보가 완전하지 않고 정보 처리능력 또한 제한적이기 떄문입니다. 사람은 이런 제한성 내에서 최대한으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웹을 뒤져도 정말 진짜로 낮은 가격을 찾아내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우리가 용팔이에게 번번히 당하고 살았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합리성을 가정한 신고전학파의 최적화(optimisation)이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개인이 합리적이지 못하면 당연히 개인의 효용은 극대화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때로는 개인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최적화를 하지 않습니다. 칼퇴 하고 싶어도 우리는 칼퇴를 하지 못하며 회식 가서 술 먹기 싫은데 억지로 술을 먹고 노래방에서 억지로 노래를 부르죠. 이것 말고도 체면 차리며 못하는 온갖 행동들을 비롯하여 일부러 최적화를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 경우 합리성이라는 도구는 경제적 분석에 그렇게 큰 유용성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5) (재)생산성((Re)producibliity): 재생산이란 용어를 많이 들어 봤으면 여러분의 사상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건 고전학파 그리고 고전학파를 계승한 마르크스의 관점입니다. 고전학파는 경제문제가 희소성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재생산이었죠. 즉, 현재의 경제상태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 혹은 그대로 유지할 건가 아니면 있는 것도 유지를 못할 정도(축소재생산)인가가 고전학파가 주로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재생산의 가능성은 '잉여'(여러분이 아닙니다)로 결정됩니다. 잉여(surplus)란 현재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외한 생산물을 의미합니다. 잉여를 어떻게 쓰느냐(즉 소비하느냐 투자하느냐)에 따라 이후 경제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경제학의 문제는 희소성에 있다는 것은 신고전학파의 견해이지만 포스트 케인지언은 이 희소성의 문제는 '토지'에만 관련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토지는 생산할 수 있는게 아니므로 희소성이 존재하지만, 자본과 노동은 지속적으로 재생산하여 그 크기를 키울 수 있으므로 자본과 노동의 분석에 있어서는 재생산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원래 고전학파는 토지에만 희소성 개념을 적용시키고 한계의 개념 또한 토지에만 적용시켰으나 이를 무분별하게 자본과 노동에 확장시켰다고 포스트 케인지언은 비판합니다.

(6) 불확실성(Uncertainty): 불확실성은 케인즈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고전학파는 케인즈의 거시경제이론을 취사선택하면서 불확실성을 버리고 나머지를 취했습니다. 신고전학파에서의 불확실성이란 위험(Risk)를 의미합니다. 재무관리를 공부하셨으면 아시겠지만 이런 위험은 주로 확률로 표현되고 평균적으로 보면 예측이 가능하죠. 이를 ergodic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은 불확실성이란 리스크와는 다르고, 확률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죠.(케인즈는 그의 케임브리지 Fellowship 논문으로 확률론 논문을 낼 정도로 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를 non-ergodic하다고 합니다. 계량경제학도 ergodic하지 않으면 즉, 평균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면 쓸모가 없습니다.(케인즈는 이러한 측면에서 계량경제학에 별로 신뢰를 보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계량경제학자가 케인즈 자신의 이론을 계량 모델로 만들어 가져 오자 호되게 비판했지만 또한 그를 후원하며 케인즈가 편집장으로 있던 학술지에 그 논문을 등재시켜줍니다) 예측은 과거에 있던 일이 미래에 반복 될 때나 가능한 법이지요. 더 나아가 포스트 케인지언은 예측은 경제학의 최종 목표가 아니며 과거에 대한 분석을 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패턴을 찾아내고 그 패턴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말하는 겅이지요.

(7) 예측이 아닌 설명(Explanation, not Prediction): (6)에서 한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경제학은 주제 넘게 함부로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다만 Stylised Facts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취기에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이해하실련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럼 안녕히.

2013년 7월 6일 토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2)-Introduction: 주류경제학의 10계명

안녕하세요 영 오랫동안 찾아 뵙지 못하고 파레토 같은 뻘글이나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단 서두 부분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비주류 경제학이라고 하니 주류 경제학의 기본적인 논의 구조에 대해서는 좀 알 필요가 있겠죠? 그래서 수업 첫번째에서 주류 경제학의 기본적인 가정들과 학문적 방법론 등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 중에서 "경제학의 10대 원리"라고 맨큐가 소개한 일종의 10계명에 대해서 짚어 보겠습니다. 이는 주류 경제학이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일단 10계명의 내용을 보죠. 경제학 전공자나 경제학 원론 수준의 수업을 들으신 분은 한 번 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감히 모세의 10계명에 빗댄 경제학의 10대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들은 언제나 Tradeoffs 에 직면한다.

트레이드오프라는 말이 좀 번역이 쉽지 않은데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저번에 포스팅 한 적 있는 파레토의 공헌 중 하나인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과 관계가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파레토 최적이란 효율성이 최고로 달성된 상황을 말하며 그 상황에서는 어느 한 가지를 더 얻으려면 나머지 중 하나는 포기해야합니다. 즉, 파이를 N빵 해서 나눴는데 내가 더 먹고 싶으면 옆 사람 접시에 있는 파이를 강탈해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즉, 이는 주류경제학이 효율성을 기본 전제로 함을 의미합니다.

2. 어떤 것의 비용은 그 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무엇이다. 

말이 웃긴 것 같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는 다음의 예로 설명 가능합니다. 내일이 시험이라 미치겠는데 시간도 없는데 과목이 두 개입니다. 그러면 둘 중 하나에 몰빵을 하든가 둘 다 조금씩 보든가 해야합니다. 그런데 한 과목이 전공이고 다른 한 과목이 교양이라 해봅시다. 그러면 교양을 포기하고 전공을 공부하겠죠?(가끔 이런 상황에서 교양을 붙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리 하세요) 그렇다면 전공 학점의 비용은 교양과목을 공부 해야 했던 시간, 다시 말하면 교양과목의 학점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회비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회계에서는 기회비용을 인정하지 않죠. 회계적 비용은... 음... 뭐 유형자산손상차손이라든가 당기손익인식금융자산평가손실이라든가 그런게 있는데... 이건 모두 기회비용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대강 말하자면 돈 나가고 들어 온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기회비용은 그렇지 않죠. 그 선택을 위해 포기한 것들 중 가장 가치가 큰 것을 비용에 더해 주어야 합니다.

3. 합리적인 사람은 한계적(marginal)으로 판단한다.

'한계적'이란 말은 경제학에서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한계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는 곧 미분값을 의미합니다. 즉, 독립변수가 아주 작은 정도로 변화하였을 때 종속변수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여태까지 해왔던 것은 제껴 두고 앞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만을 판단 근거로 삼겠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수학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경제문제들에 대해서 최적화(optimalisation)을 하게 되면 미분개념이 당연히 쓰이게 되고 이 때 한계라는 개념은 당연히 등장하게 됩니다.

4. 사람들은 유인(incentives)에 반응한다.

여기서 말하는 유인이란 금전적 인센티브를 말합니다. 세상에 금전적 인센티브 말고 무슨 인센티브가 있을까요... 사실 사람들은 꼭 인센티브, 특히 금전적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체면치레 하느라 마지막 남은 탕수육을 먹지도 못하고, 완전 비재화에 사람 머리만 아프게 만드는 술을 강권해서 와장창 먹고 토하고 또 먹고 그러고 다음날 아침에 죽을 것 같고 그러지 않습니까? 사실 인센티브라는 건 그렇게 딱 정할 수도 없는 개념이거니와 사람의 합리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 인센티브의 역할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합리성이라는게 반드시 금전적인 부분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다차원적인 것도 고려할 수 있죠.

5. (자발적)교환은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자유무역협정과 누구누구 같은 시장지상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자들의 논거가 되는 원리입니다. 교환을 하면 모두가 그 교환을 통해 이익을 본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도대체 나아진다는 것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여기서 효용 개념이 등장합니다. 즉, 교환으로 효용이 증가한다는 것이지요.

6. 시장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 

많은 경제학자에게 시장은 '전지전능한 우리 주'와 같은 위상을 지닙니다. 하지만 사회과학에서 전지전능한 뭐 이런 것을 말하면 안되므로 '대부분'이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주류경제학 이론을 놓고 봤을 때, 대부분의 경우 경쟁적 시장이 경제의 효율성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효율성이 뒷받침 되었을 때, 시장은 경제활동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죠. 그러면 시장 말고 뭐가 있냐고요? 정부가 있습니다. 위대한 당중앙과 중앙계획당국의 생산계획을 받들어 로력을 다해서 목표치를 생산하는 계획경제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복지국가처럼 시장에 간섭하는 정부로서 존재할 수도 있죠. 하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에 좀 더 우선 순위를 둡니다.

7. 정부는 때때로 시장의 결과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을 주류 경제학이 떼로 부정하고 그러진 않습니다. 정부가 없으면 당장 도둑은 누가 잡고 댓글은 누가 달며 재벌 회장은 누가 구속하겠습니까?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주류 경제학에서는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장실패 즉, 시장이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만 정부가 개입하며 그 개입의 부작용도 최소화시키기를 원하지요. 시장이 효율적인 결과를 내지 않는 경우는 독과점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쓰레기 같은 통화 품질에 요금만 더럽게 비싼 이동통신 서비스라든가 그런 것 말이죠.

8. 한 나라의 삶의 수준은 그 나라의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능력에 달려 있다.

뭐 방글라데시, 네팔 이런 곳의 사람들도 끝내주게 행복하게 살지 모르지만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으며 월급의 구원을 받고 신용카드의 유혹을 받는 우리로서는 돈을 잘 버는게 아무래도 삶의 수준을 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GDP라는 총계적인 수치로서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실시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GDP는 문제가 많은 개념입니다. 환경오염의 정화 비용도 GDP에 들어 가서 국민소득을 높일 수 있고 막 4대강, 한식세계화 사업 이런 것도 GDP를 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양적으로는 좋은 통계치일 수는 있지만 질적으로는 문제가 있고 또한 양적으로도 환경파괴와 같은 측면은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9. 정부가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하면 물가는 상승한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관한 주류 경제학의 입장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언제나 화폐적인 현상, 그러니까 화폐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화폐가 과잉발행 되었을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차 대전 직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짐바브웨(너를 1조 짐바브웨 달러만큼 좋아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후에 설명하겠습니다.

10. 사회는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과 실업률 간에 상충관계를 갖는다.

마지막 원리는 거시경제정책의 측면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단기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실업률이 떨어지고 물가가 하락하면 실업률이 상승한다고 합니다. 이는 필립스 커브라는 개념으로 나타나지요. 단기라는 단서가 붙은 것을 보면 장기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기에는 주류경제학적 입장에서는 완전고용이 달성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단기적으로도 상충관계가 없을 수 있고 장기에서도 완전고용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 중 하나가 완전고용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장기에서도 시장은 완전고용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상으로 맨큐의 경제학의 10대 원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경제학자들 간의 일종의 "합의된 견해"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약한 노동조합
2. 노동시장에서의 더 큰 탄력성(탄력성이란 임금이 노동 수요 공급에 신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임금제약(최저임금제도를 반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정부서비스의 감축과 세율의 인하
5. 재정적자의 준(quasi)제거
6. 공공지출의 제한
7. 민영화
8. 규제완화
9. 독립적 중앙은행(인플레이션 통제에 있어서의 독립성입니다)

저는 위에서 9번에 일부 찬성하는 것을 빼고는 전부 반대하지만 뭐 그렇다고 합니다. 뉴스와 경제신문, 일부 신문의 사설과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앵무새처럼 나오는 소리를 모아 놓은 듯합니다.

다음 번 포스팅 때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기본적 방법론들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2013년 7월 1일 월요일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


I.     서론-파레토의 생애와 학문

Finer는 그의 책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1966)에서 파레토를고양이와 같이 홀로 걷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파레토는 마치 도도한 고양이같이 귀족적인 속성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는 사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의 날 선 비판은 누구도 달가워할 리 없었다. 파레토는 이러한 고고한 고립 상태에서 그의 뛰어난 경제학적, 사회학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그의 경제학과 사회학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그의 사상과 학문적 발전의 맥락에 대해 짚고 넘어갈 것이다.

A.   파레토의 생애와 학문적 발전 과정

파레토는 이탈리아 귀족가문의 후손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1848 7 15일 탄생하였다. 파레토의 아버지(Marchese Rafaello Pareto)는 이탈리아에서 열렬한 공화주의자로 활동하였으며 관련된 사건으로 인하여 이탈리아를 벗어나 파리에 머물던 중 파레토를 낳았다. 파레토의 아버지는 공학자였고 파레토는 아버지의 직업을 그대로 따라 Turin의 공과대학(polytechnic)에서 5년간 civil engineering을 배우게 된다. 공학도로서,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젊은 시절부터 갖게 된 것은 순수경제학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1]공학자로서 학업을 끝낸 파레토는 철도회사에 취직했고 얼마 안가 철강회사의 경영인이 되었다. 젊은 시절의 파레토는 그의 학문적 연구 성과에서 나타나는 귀족주의적 성격과는 달리 열렬한 공화주의자이며 자유주의자였으며 민주주의자였다. 그는 자유 무역을 옹호하고 군비감축을 지지하였으며 당시 이탈리아의 상류층들을 이탈리아 빈민의 피를 빨아먹는 자들이라고 맹비난 했다.[2] 1876년 좌파가 집권하여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이에 대해서도 파레토는 열성적으로 반대하였다. 그 이후 파레토는 철강회사의 경영인직()을 버리고 평론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이후 평론가로서 활동하면서 그는 그의 자유주의적 입장을 계속하여 견지(堅持)하였고, 많은 수의 망명한 사회주의자들을 보호하고 드레퓌스 사건에서 반-반유대주의적 입장에 서서 드레퓌스를 옹호하였다.[3] 이후 그는 스위스 로잔 대학의 Walras Chair를 계승하여 경제학 교수가 되었고 은퇴 후에는 칩거 하며 사회학을 연구하며 1916년까지는 사회학 강의를 하며 지냈다.
한편 파레토는 1900년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4] 그는 당시 드레퓌스 사건에서 승리한 세력이 그 승리에 도취되어 마음대로 권한을 남용하고 이탈리아에서 세를 얻은 노조와 사회주의자들도 자신들의 특권을 남용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의 우수한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을 보며 사람의 행동이 이성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감정에 따라 행동한 후 논리적인 양 합리화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이후 파레토의 사회학적 논의의 기반이 된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바꾼 후 파레토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부패와 무능만을 목격했다. 이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고전을 탐구했던 그에게는 강력한 질서를 추구했던 로마 공화정과 비교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파레토가 로마 집정관처럼 독재적 권한을 가진, 질서의 수호자를 원했을 것이라고 슘페터는 추측한다.[5] 파레토는 실제로 무솔리니의 집권과 질서 회복에 대해 승인한 전력이 있지만 파시즘은 거부하였다.[6]

B.    당시의 시대상과 파레토의 학문적 경향

당시의 사회는 Liberal-Democracy의 번창과 함께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7] 19세기 중반, 서구 사회는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과 함께 사회가 영원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었으며 과학에서는 positivism의 입장으로, 그리고 학문에서는 전반적으로 rationalism의 입장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의 힘은 여전히 강했지만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교황의 영향력은 급속히 쇠락하였고 이와는 반대로 인본주의(humanitarianism)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인간의 완벽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은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도 나타났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인류의 영속적 발전을 전망했고 마르크스는 계급 갈등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인간성의 실현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오면서 세태는 급변했다. 이전의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병행하여 발전해 오던 자유시장경제와 자유 무역은 노동자 계급과 지배 계급 모두의 이해관계에 의해 보호무역과 복지 시스템으로 변형되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실증주의적 관점이 쇠퇴하였으며 경험을 모아 법칙을 도출한다는 믿음은 기울고 있었다. 이런 사조는 irrationalism이나 anti-rationalism이라고 칭해졌으나 그보다는 주관주의(subjectivism)라고 지칭하는 것이 그 특징을 더 잘 표현한다.[8] , 그 동안 자연과학과 경제학, 사회학에서 흔히 law라고 지칭했던 것들이 과연 객관적으로, 관찰자와 독립하여 성립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파레토는 최초에 실증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그의 사회과학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도 주관주의를 옹호하게 되었고 당대의 지적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파레토는 현실 문제에 대한 열정으로 그의 학문적 경력을 시작하여 경제학을 거쳐 사회에 대한 더 넒은 설명을 위해 사회학으로 나아갔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경제학과 사회학 모두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파레토가 구상했듯이 사회학과 경제학을 통합하여 사회 전체에 대해 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본론에서는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적 성과에 대해 간략히 살펴 보고 경제학과 사회학이 어떻게 구분되어 후대로 이어져 내려왔는지, 그리고 사회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위해서는 왜 같이 연구 되어야 하는지를 다룰 것이다.


II.    본론

1.    파레토의 학문체계에 있어서의 경제학과 사회학의 구분

Pareto의 학문 구분

파레토는 스스로 경제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이 불완전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경제학 연구에 몰두한 결과, 경제학이 수단으로는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려 했던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데, 그가 경제학에 대한 환멸을 일으키게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됐다. 첫째, 경제학 모형은 사회체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변수들을 상수로 가정한다는 점과 둘째, 인간동기의 복합성을 간과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이다.[9]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파레토는 사회학의 영역으로 연구범위를 넓혔다. 그는 인간사회의 근본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위해 특히 인간과 현상의 상호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10]

Logical Action vs. Non-logical Action

파레토는 사회학이 경제학과 함께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파레토는 인간행위가 합리적(logical)인 경우보다 비합리적(non-logical)인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경제학이 희소 자원의 획득을 추구하는 합리적 행위를 다룬다면, 사회학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1]

사회학으로 연구방향을 바꾸면서 파레토는 인간행위를 분류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세웠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행위는 본능적 행위, 합리적 행위, 비합리적 행위로 나누어진다.[12] 본능적인 행위는 말그대로 본능을 따르는 것으로 행위의 주체자는 그 행동을 왜 하는지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에, 합리적 행위와 비합리적 행위는 행위자가 자신에 행동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합리적 행위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행위를 지칭한다.

     특정 행위와 그 행위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사이에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이론에 근거한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행위자는 이 관계를 기반으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했어야 하고, 사전에 해당 이론을 모르더라도 이 관계는 성립해야 한다.
     행위자가 목표한 바가 그 행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수단과 목표 사이의 논리적 결합은 행위를 수행하는 주체뿐만 아니라 훨씬 폭넓은 지식을 지닌 제 3자의 관점에서도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13]

위 조건을 만족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행동들이다. , 합리적 행동이란 목표에 적합한 수단을 사용하고 목표와 수단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는,” 그리고 그 논리가 주관적인 관점과 객관적인 입장에서도 논리적인 것을 일컫는다.[14]

그 외의 모든 행동은 비합리적이다. 비합리적인 행동의 원인은 옳지 않은 연역적 추론이나, 더 보편적으로 인간의 기본감정이다.[15]인간은 우선 목표하는 바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해 결정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 혹은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고 나서야 그 행동을 왜 하였는지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말하는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후에 형성된 논리적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16] 

파레토는 그가 사회학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할 때 사회학과 경제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제의 합리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분류의 방법은 파레토의 제자들과 후세의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예를 들면, Paul Samuelson학계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주제의 합리성에 기반해 경제학과 사회학을 구분한다라고 했으며, 이러한 구분은 파레토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17]

그러나 명시해야 할 것은 파레토식의 사회학과 경제학 구분 방법의 계승이 온전히 옳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였으나 사회학자로 전향한 Talcott Parsons에 당대의 학자들에게 수용되었지만 잘못 전해졌다고 판단된다. Parsons의 저서인 『사회적 행위의 구조』[18] 에 언급된 바와 달리, 파레토는 오히려 이러한 사회학에서 경제학을 구분하는 방법을 포기하였다. 그는 경제학자들 사이에 알려지던 통념인 경제적 변수가 기타 사회적 변수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공감하였다고진술했다.[19]그는4권으로 구성된 『일반사회학논고』를 통해 사회학적 연구를 마치고 나서야 그의 오류를 발견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로 하여금 경제 위기의 특정 이론에서 사회 현상의 일반적 이론에 이르는 짧은 단계에 다다르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단지 합리적과 비합리적과 구분만을 경제학과 사회학 정의에 척도로 사용하는 것과 이를 통하여 두 학문을 분리하는 것은 파레토와 그의 연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한다.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 연구를 상호보완적으로 본다면 그의 체계를 더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고, 나아가 더 깊게 파고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그의 경제학과 사회학 체계이다. 그의 개념이 항상 일관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하다.이는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적 성과를 살펴 본 뒤 다시 논할 것이다.


2.    파레토의 경제학과 사회학

A.   경제학자로서의 파레토

경제학자로서의 파레토가 경제학에 남긴 가장 큰 공헌은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일 것으로 생각한다. 파레토 최적은 경제학에서 효율성의 측정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고 미시 경제학과 거시 경제학을 가리지 않고 많은 경제 모형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파레토의 이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업적인 파레토 최적과 함께 파레토는현대 경제학 발전에 있어서 효용이론 등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파레토의 경제학에 대한 공헌을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a.     효용이론

J. Bentham의 공리주의에서는 즐거움(pleasure)에서 고통(pain)을 뺀 것을 최대화(maximization)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는 효용의 측정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했고 효용이 측정 가능하다면 효용의 기수적(cardinal) 표현과 개인 간의 비교도 가능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파레토는 이전까지 경제학에서 사용되던 효용 개념 중 기수적 효용 없이도 미시경제학적 논의가 가능함을 발견하였다.[20] 파레토는 피셔의 연구(Mathematical Investigations into the Theory of Value and Price, 1892)의 영향을 받아 측정 가능한 효용(measurable utility) , 기수적 효용을 표기하고 서수적 효용 지표를 도입하였다.[21] 파레토가 서수적 효용 개념을 미시경제학에 있어 도입한 도구는 에지워스(F. Edgeworth)의 무차별 곡선이었으나, 에지워스가 무차별 곡선을 기수적 효용에서 도출해낸 것과는 달리 파레토는 무차별 곡선에서 기수적 효용의 요소를 제거하고 경쟁의 균형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22]

기수적 효용을 제거함과 동시에 파레토는 기존의 효용 관념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기존에 사용되어 오던 효용(utility)의 개념과는 다른, ophelimity를 도입하였다. 이는 파레토의 경제학 연구 목적을 위해 파레토 자신이 고안한 개념이다. 경제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기존의 효용 개념은 파레토에게 있어서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었다. 따라서 이는 엄밀한 과학적 연구에 사용되기에는 부적합했다.[23] Utility는 그 뜻하는 바가 개인적인 차원도, 공동체적인 차원도, 사회적인 차원도 될 수 있어서 정확히 한 개인의 만족을 측정하기에는 부적합한 개념이었다.[24]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만족을 나타내는 ophelimity의 개념이 필요했다. 파레토는 이를 경제학이 물리학과 화학과 비견할 수 있는 엄밀성을 갖춰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레토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25]

첫째로 우리는 ophelimity에 대한 연구를 다양한 형태의 utility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그런 뒤에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인간 그 자체로 돌려야 한다. 인간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인간의 속성을 벗겨내고 격정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떨쳐 내어 인간을 오직 ophelimity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분자로 만들어야 한다.”(Pareto 1949b, pp.442-43)
파레토는 이 분자들이 Homo Economicus이며, 이들 간의 역학(力學)을 연구하는 것이 pure economics라 보았다.

b.     후생경제학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파레토의 경제학에 대한 가장 큰 공헌은 후생경제학에 있다.[26] 파레토 최적은 현재에도 후생경제학에 있어서 정책 판단의 효율성 기준으로 이용되고 있다. 파레토 이전에도 사회 전체의 복지 혹은 후생에 대해서 논하려던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Bentham의 공리주의도 이러한 맥락에 있었고 파레토와 근접한 시대에는 에지워스와 같은 경제학자들도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사회전체에 대한 공공복지의 개념은 파레토 이전의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도 그 개념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았을 뿐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27] 하지만 힉스가 언급했듯이[28]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의 개념은 이전의 후생 개념들에 비해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공리주의의 전제였던 개인의 효용함수가 모두 동일해야 한다는 가정을 회피하여 더욱 다양한, 무한에 가까운 최적의 분배상태들을 가능하게 하였다.[29][30] 파레토 최적의 개념은 또한 이전의 공리주의적 개념과는 달리 윤리적인 중립성을 담보로 한다.[31] 아무리 불평등한 결과라도 파레토 최적일 수 있고 평등한 분배 상태도 파레토 최적의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 일단 파레토 최적을 달성한 후 그 이후의 문제는 순수경제학의 연구 범위를 넘어서 경제 외적인 조건 즉, 윤리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할 일이었다.[32]

파레토의 후생경제학에 대한 또 하나의 공헌은 자유로운 경쟁과 교환(free competition and exchange)의 결과가 사회 전체의 후생 극대화를 가져오며 이 상태에서 파레토 최적이 달성되어 효율성 기준을 충족한다는 파레토 정리 혹은 후생 경제학의 제 1 정리를 정립한 것이다. 이는 파레토의 생산에 관한 이론과 연계되어 있다. 파레토의 스승인 왈라스는 생산과 관련하여 고정된 생산계수(coefficient of production-산출량의 단위당 투입량)를 가정하였으나 왈라스가 후에 가변적 생산계수를 채택하였고 파레토도 이에 따라 가변적 생산계수를 자신의 이론에 도입하였다.[33] 파레토는 왈라스의 결론에서 더 나아가서 자유로운 경쟁과 교환의 과정을 통해서 결정되는 생산계수는 가장 적은 희생을 통해 가장 많은 효용을 얻어내는 것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생산자는 혹여 라도 노동자들의 지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생산계수를 변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소득 재분배는 일단 파레토 최적을 만족시키는 생산계수 하에서 생산된 생산물을 시민들(citizens) 간에 이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34] 그러나 파레토는 이 모든 논의를 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누리는 효용 혹은 ophelimity의 크기를 결코 기수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에 사람들의 이득과 손실을 표준가치척도재(numeraire)로 표시하였다.[35] 슘페터는 이런 일련의 파레토의 경제학 연구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파레토가 많은 부분을 선대 혹은 당대의 연구 성과들을 명시적으로 확립하거나 위험한 위치에서 안전한 곳으로 밀어내었다고 평했다. 슘페터는 파레토의 ophelimity개념이나 서수적 효용의 개념 그리고 표준가치척도재 등의 개념이 한계효용이론과 공리주의를 타파하려는 파레토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그것은 파레토의 착각이었을 뿐이라며 자신의 책에서 논평하고 있다.[36]

c.     일반균형이론

파레토의 일반균형이론은 Walras Chair를 이어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독창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왈라스의 이론을 더욱 명확하게 한 데에 그 가치가 있다. 그는 초기에 일반균형이론의 창시자인 왈라스에 대해서 큰 존경을 보냈고 그의 이론을 더욱 명료하고 일반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데 성공하였다.[37]파레토는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을 명료하게 하는 한편 일반균형이론 체계에서 생산이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끌어 올려 균형이론의 진일보에 기여하였다. 왈라스의 균형체계에 소비자 이론에서의 무차별곡선과 같이 등량곡선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등량곡선도 무차별곡선과 같이 에지워스 상자(Edgeworth’s Box)에 위치할 수 있었고, 횡축과 종축은 각각 노동 부존량과 자본 부존량을 나타냈다. 이들 중 효율적인 생산관계의 집합을 계약곡선으로 옮겨서 이를 생산요소 공간에서 상품 공간으로 옮기면 생산가능곡선을 그릴 수 있고 이 곡선 위의 한 점을 부존으로 하여 다시 소비 이론의 에지워스 상자를 그려 일반균형을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38]

d.     기타 경제학적 기여[39]

파레토는 위에서 언급한, 상대적으로 중요한 경제학적 성과 이외에도 다른 경제학적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가 언급한 분야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지대이론
-파레토는 지대와 준지대 이론을 일반화 시켰으며 지대는 잉여보수에서 온다고 보았다. 잉여보수는 어떠한 생산요소에게 주어지는 총 보수에서 그 생산요소의 기회비용을 제한 것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다. 파레토는 지대가 생산부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알았지만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기업론과 불완전경쟁
-파레토는 왈라스 체계에서 존재하던 완전경쟁체제 이외에도 독점 시장에 대한 분석도 시도하였다. 이러한 분석 과정에서 그는 평균비용함수와 한계비용함수 등에 관심을 가졌으며 독점기업은 이윤최대화의 관점에서, 경쟁기업은 비용최소화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또한 당대와 그 이후에 한동안 나타났던 시장에 존재하는 기업의 수의 관점이 아닌, “가격의 관점에서 시장 형태를 분석하였다. , 기업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순수경쟁과 독점이 구분된다고 보았고 이는 시대를 앞서간 분석이었다.
     경제위기와 변동
-파레토의 경기변동이론은 기본적으로 순수경제이론의 영역이 아니었으며 동태적인 것으로 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주제는 이 글의 후반부의 사회적 경제학 혹은 경제적 사회학(sociological economics)에서 살펴볼 것이다.
     국제무역이론
-국제무역이론에서 파레토는 평론가 시절부터 그의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로 인해 줄곧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왔다. 그는 일반균형이론을 국제무역에 도입하여 분석하였으며 이에 따르면 보호무역주의는 파레토 최적을 보장하는 생산계수의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후생 증대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보호무역이 독점의 경우나 유치산업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전체주의 경제체제
-전체주의, 다시 말하자면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자본주의의 경쟁과 똑 같은 파레토 최적의 생산계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파레토는 사회주의도 이점을 가질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실제로 소비에트 연방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계획 입안자들은 마르크스의 이론보다 파레토의 이론이 정책수립에 더욱 유용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파레토는 비록 그 자신이 스스로 고안하거나 창조하여 경제학 이론의 새 지평을 여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선대(先代) 경제학자들의 유산을 이어 받아 일반화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후대(後代) 경제학자들이 딛고 올라 설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 주었다. 특히 일반균형이론과 후생경제학, 그리고 한계효용 이론에서의 기수적 효용으로부터 서수적 효용을 거쳐 현시선호(revealed preference)로의 발전을 이끌어 내었다고 할 수 있다.[40] 그러나 파레토의 경제학은 합리적(logical) 행위자로의 경제적 인간(homo oeconomicus)를 상정한 순수경제학을 넘어 경제사회학 또는 사회경제학이라고 불릴 만한, 인간의 비합리적 행위를 상정하는 경제학까지 확장된다. 이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B.    사회학자로서의 파레토

파레토의 사회학 체계는 그의 대표작 『일반사회학논고』를 통해 알 수 있다. 4권으로 이루어진 『논고』의 첫 세권은 사회학의 기본개념과 원리를 확립하고 있고, 마지막 제4권은 앞서 설명한 기본을 근간으로 사회의 일반적 행태를 논한다. 여기에서는 『논고』의 내용을 구성순서를 따라 파레토의 사회학 체계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1

파레토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행위의 대부분은 비합리적이며 논리보다는 감상(sentiments)’에 의해 결정된다. 파레토는감상에 대한 직접적인 정의는 내리지 않았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 기저의 가치정향(value-attitude)으로 해석할 수 있다.[41] 감상은 가치관과 생각을 형상화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어떤 감상 혹은 가치가 기저에서 더 지배적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이 결정된다. 감상의 예로 집단유지와 결합을 들 수 있는데, 이 둘 중 집단유지의 감상이 더 지배적이라면 그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추구한다.[42] 만약 결합의 감상이 더 지배적이라면 혁신적인 가치관을 가질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 감상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도 존재하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한다.[43]

2

파레토 체계의 감상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인간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44] 따라서 이를 가늠하기 위해 파레토는잔기’(residu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잔기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서 비롯되는 행동인데, 동시에 감상을 드러내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감상은 본능을 얼만큼 표출할지에 대한 한도를 정하는데, 잔기는 결과적으로 현시화된 행동을 일컫는다.[45]

파레토는 잔기가 나타내는 인간의 본능, 혹은 가치정향을 아래 6개의 분류(classes)로 구분했다.

1. 파레토의 여섯 가지 본능[46]
분류
본능
정의
I
결합
재능 있는 꾀, 교활함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

II
집단유지
확립된 방식에 대한 완고한 집착과 전통에 대한 옹호

III
활동성
감정을 표현하거나 행동하려는 욕구

IV
사회성
협력과 용인에 대한 욕구

V
통합
물질적인 자기이해와 지위, 자기정체성에 대한 욕구

VI
()
성적 만족에 대한 충동


감상, 잔기와 본능에 대해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파레토가 정의하는 감상은 가변적인 반면에 본능은 불변한다는 것이다.[47]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이 감상은 본능을 얼만큼 드러낼지에 대한 한도를 정하기에 어떤 사람의 행동이 변했다면, 그것은 감상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48]
또한 파레토는 위 테이블에 명시된 개념을 바탕으로 행동을 분류했으며 이를 기준을 배합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성향을 분류했다.

이와 관련하여 파레토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첫째, 사회를 단위로 평가했을 때, 각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감상은 다른 사회에서 나타나는 감상과 종종 다르다는 점, 둘째, 개인의 성격은 그 사람의 본능을 형상화하는 것으로서 감상의 유형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셋째, 결합과 집단유지는 그가 밝힌 잔기 중 가장 중요한 잔기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사회체계의 동학이 결합과 집단유지라는 감상의 구성비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49] , 인간의 잠재적 행위는 기본적으로 본능을 따라가는데, 그 행위가 나타나기 전에 감상(가치관)에 의해 제한된다. 결과적으로 행동에는 감상으로 인해 조정된 본능적 충동이 반영된다. 마지막으로, 잔기는 사회체계의 동학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추가적으로, 위 테이블에서 분류한 본능 중에 self-interest, 즉 개인적인 이익추구에 대한 본능은 배제되어 있는데 이는 파레토가 self-interest와 관련된 행위는 종종 개인의 이익추구라는 뚜렷한 목적을 기반에 두고 이루어지기에 합리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50] 이런 합리적인 개인의 이익추구를 파레토는interest라는 개별적 개념 하에 두었으며, 합리적이지 못한 이익추구는 Class V 로 분류하였다.[51]

마지막으로, 감상을 표출하는 모든 행위를 잔기라고 할 수는 없다. 위에 설명된 잔기는 잔기의 속성에 대한 정의인데, 잔기의 일차적인 정의는 이론이나 신념체계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일종의 상수(constant)이다. 이 조건을 충족했을 때 우리는 특정 행위를 잔기라고 부를 수 있다.[52]

3

3권에서 파레토는 파생체의 개념을 소개한다. 파생체란, 이론 혹은 신념체계에서 나타나는 잔기에 대한 추론을 일컫는데, 잔기에서 파생(derive)된다는 의미에서 파생체(derivation)라 명명(命名)되었다. 인간행위가 대부분 비합리적이며 현존하는 이론과 신념체계가 인간의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파레토에게 파생체 역시 비합리적인 인간행위를 합리화하려는 허구에 불과했다. 또한, 파생체는 언제든지 인위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기에 가변적이었으며, 여러 학문의 이론체계 또한 파생체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53]

4
          
파레토는 사회를 상호의존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체계로 보아 체계의 한 부분에만이라도 충격이 가해진다면 그것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의 다양한 현상이 사회의 한 요소의 변화에서 시작해 그것이 다른 요소와 갖는 상호의존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는데, 따라서 각 현상에 대한 각각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54]파레토는 이런 가정에 입각해 사회요소들간의 상호의존성이 사회적 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고자 했으며, 나아가 이 사회적 변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유형을 갖는지에 대해 탐구하였다. 파레토는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끊임없이 변동하고 따라서 자신만의 순환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순환에선 나쁜 시기와 좋은 시기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사회의 흐름을 결정하는 세가지의 순환은 경기순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간의 순환,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력의 집중과 분산간의 순환이다. [55]파레토는 각 순환에 내제된 동학과 이 세 순환사이의 연계성을 찾으려 했으나 그 논의는 일관성이 없었다. 다만, 그가 궁극적으로 내리려고 했던 결론은 사회의 전반적인 감상이 사회순환의 원인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3.    파레토 사회학과 경제학의 통합

a.     파레토 체계 내의 경제학-사회학의 상호보완적 성격

파레토의 연구는 현재 경제학과 사회학으로 구분되어서 전승되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주로 파레토의 순수경제학 연구 성과를 이어 받아 미시경제학에서 큰 진전을 보았고 사회학에는 사회학자로서의 파레토의 엘리트 순환이론 등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파레토의 인생과 저작을 살펴 보면 파레토는 단지 경제학자로서 혹은 사회학자로서만 남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회과학이 사회를 분석함에 있어서 훨씬 다양한 도구를 필요로 함을 인식하고 있었다.[56]파레토에게 있어서 사회학과 경제학은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파레토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사람의 행동은 전혀 논리적(logical)하지 않으며 따라서 논리적 인간(homo economicus)을 다루는 순수경제학으로는 인간의 비논리적인 부분에서 초래되는 경제의 동태적인 모습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57] 파레토는 균형(equilibrium)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그 범위를 경제적인 균형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대시켜서 사회적 균형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과정에서 파레토는 순수경제학의 일반균형에서 보여주었던, 역학(mechanics)적 측면보다는 생물학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파레토의 경제학적 성과는 Neo-Classical의 정학(statics)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초점은 정학이 아닌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에 가까웠다.[58]

파레토는 일단 경제학(political economics)도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위의 파레토의 경제학에서 다룬 부분은 그의 경제학 체계의 일부인 순수경제학이었고 그는 현실에 실제로 적용 가능한 응용경제학(applied economics)을 순수경제학과 구분하였다. 응용경제학은 구체적인 사회 현상들을 분석하는데 더 적합한 것이었다.[59] 이러한 체계에 파레토는 사회학을 추가하였다. 사실 그는 초기 저작에서 사회학에 대하여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60] 그러나 그의 후기 저작들에서 사회학은 상당히 고평가 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인간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경제학과 다른 모든 사회과학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61] 파레토의 학문 체계에서 그 위상이 높아진 사회학은 경제학과 함께 사회를 분석하는 틀로 자리 잡았고 경제학과 사회학의 파레토 본인이 언급한 적은 없지만 후대 학자들은 이를 Economic Sociology로 명명하였다.[62]

b.     Economic Sociology 또는 Sociological Economics

파레토 자신은 사회학과 경제학의 연구 대상이 각각 사람의 비논리적인 행동과 논리적 행동이라고 하여 두 학문을 구분하였다. 그러나 Patrik Aspers(2001)는 이 파레토의 구분을 Formal Boundary라고 지칭하고 학문이 다루는 삶의 영역(sphere of life)에 따라 경제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으로 구분하여 이를 Substance Boundary라고 이름 붙였다. Aspers는 이 두 구분을 2차원 평면에 놓고 4가지의 학문 영역을 다시 구분하였다.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63]


Sphere of Life(Sustance)
The State of Science(Formal)
Economic
Social
Logical Actions
Economics
Logical Sociology[64]
Non-logical Actions
Economic Sociology
Sociology

economic sociology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 economic sociology과 과연 파레토 경제학의 사회학적 실마리인지 의문이 남는다. 비록 명칭은 경제사회학으로 붙었지만 사실 이 분야는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꼭 사회학(sociology)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Aspers(2001)와 파레토의 저작, 그리고 파레토 분배법칙, 계급이론, 그리고 이에 따른 엘리트 순환이론을 살펴보면 우리가 오늘날 거시경제학이라고 부르는 부분의 많은 부분을 파레토는 사회학적 기제를 통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비논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행동의 총계적 수준(aggregate level)은 논리적 인간인 homo economicus를 하나의 분자로 보아 역학적인 방법을 통해 분석하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65] 사람의 행동은 비논리적 사고에서 기인하기 때문이고 논리는 그 비논리적 행동을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파레토의 견해는 여기서도 드러난다.[66] 따라서 economic sociology라는 용어는 경제학적 분석 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Sociological Economics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뒤에서 파레토가 sociological economics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경제적 현상을 논할 것이다.

4.     경제학과 사회학의 통합-경기순환이론[67]

파레토의업적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경기순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형을 통해 파레토는 상호의존성의 법칙들이 인간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a.     경제의 팽창국면

경제가 팽창하는 국면에서는 생산설비가 소비재 부문에 투입될 것이고 따라서 총체적인 경제활동을 투기적(speculative)으로 만들 것이다. 이런 투기적 성향을 가진 생산자는 I type의 잔기(residue)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의 상업적인 부문을 관장하고 이 부문의 성장을 가속화시킨다.
이 때, 정치적인 부분은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행정부 조직의 팽창으로 나타난다. 힘은 분산되고 가장 직급이 낮은 공무원들(functionaries)에게까지 힘이 주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선거가 통제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는 상황을 야기한다.

전통주의(tradition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간의 신념 순환(cycle)은 경제적, 정치적 순환의 변화에 반응하여 변동하기 시작한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는 행위들에 대해 더욱 개방적이 될 것이고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을 것이다. , 경기팽창이 권력 분산으로 시작하여 자유주의의 부상(浮上)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반응들을 촉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입장에서 적절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예를 들면 사치와 같은 것에 더욱 관대해지게 된다.

파레토는 엘리트 순환이론을 경기 순환 이론에도 응용한다. 경기의 팽창 국면에서는 경제적 엘리트 게층 중 speculator계층이 힘을 얻게 된다. 1 유형의 잔기가 특징인 이들은 상업적 엘리트로서 과감한 경제활동을 통해 경기 팽창을 주도하는 동시에 지배적인 엘리트로 자리매김한다.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변동하면서 대중의 소비 습관도 변동하게 된다. 사람들은 점점 과감해지고 지출을 증가시켜 경기 팽창을 가속시킨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저축이 감소하여 자본 축적을 방하고 궁극적으로 경제가 반대 방향 즉, 경기 수축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된다.


b.     경제의 수축국면

이제 경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경기 수축으로 인해 생산설비는 더 이상 자본재 생산에 집중되지 않는다. 대신 생산설비들은 식료품(staple) 생산에 투입되고, 상업 부문은 보수적인(conservative) 공급자들에 의해 지배된다. 이 보수적 공급자들은 II type의 잔기를 보이며 투기(speculate)하려는 동기를 갖고 있지 않다. 팽창국면과는 달리 이때는 제 2 유형의 잔기를 특징으로 하는 rentier계층이 경제적 엘리트의 지위를 획득한다.[68]

동시에 사회의 행정부문에서 권력의 집중화 현상이 일어난다. 파레토에 따르면 이 시기의 정부 당국은 보수적이며 대중 통제를 위해 강제력(强制力)의 사용도 불사한다. 이런 추세에 따라 전반적인 대중의 분위기도 보수적으로 변화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규칙에 어긋나는 급진적 행동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않으며 검소와 같은 전통적 가치들을 유지하려고 한다. 소비는 여전히 감소하고 이는 경기 침체를 심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의 감소는 동시에 저축의 증가를 가져오고 결국 사회 전체의 자본축적을 증가시켜 경기 팽창의 계기가 된다. 이후 경제는 앞서 언급한 경기 팽창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모형은 모든 인간 사회의 구성 요소가 상호의존적이며 그 자체로 영원한 순환을 이어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파레토가 사회학자로서 거듭 강조하여 주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기순환이론은 파레토의 저작에서 다룬 많은 이론들과 요소들이 함께 응용되어 있으며, 때문에 경기순환이론은 그의 일반사회학의 전범(典範)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5.    경제학과 사회학의 통합-파레토 법칙(Pareto’s Law)

파레토의 Economic Sociology 혹은 Sociological Economics에 대한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저 유명한 파레토 법칙(Pareto’s Law)일 것이다. 파레토 법칙은 현대에 와서 다시 재조명 되며 2080의 법칙으로 언급되며 경영학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20%의 사람들이 80%의 부를 소유한다든가 20%의 상품이 80%의 매출을 가져온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 법칙은 파레토가 연역적인 방법이 아닌, 귀납적인 방법을 통해서 얻어낸 법칙이다. 파레토는 여러 국가들의 일정 기간 동안의 소득분배 상태를 연구하였다. 연구 대상은 영국,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독일의 몇몇 도시들 그리고 파리와 페루의 소득분배에 대한 자료로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사회를 포함하고 있다.[70] 결과는 다음의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은 소득이 를 넘는 가계의 숫자를 나타내고 A parameter이며 는 그래프의 기울기를 나타낸다. 파레토의 요지는 가 일정한 값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71] 다시 말해서, 소득 분포의 형태는 거의 항상 일정 범위 내에서 고정되어 있으며, 설령 이 소득 분포에 변화를 주기 위해 어떠한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사회가 원래 가지고 있던 분포 형태로 회귀한다. 파레토는 영국과 이탈리아 도시들의 소득분배가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음을 보이며 이런 형태가 여러 사회와 시대에서 유사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하였다.[72]

이는 파레토의 경험적 법칙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후대에 실증 연구와 기타 연구들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슘페터는 이에 대해 “’파레토 법칙이라 불리는 이 성과는 수많은 문헌이 고스란히 이것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다 바쳐졌다고 할 만한 사태를 자아내기에 이른다라고 평하며 이 법칙이 후대의 학자들에게 가져온 논란을 표현하고 있다.[73] 이러한 논란을 살펴보면 파레토 법칙에서 말하듯이 과연 가 일정하여 재분배 정책과 같은 평등주의(egalitarian) 정책이 효과가 없을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바는 파레토 법칙이 파레토의 사회학과 경제학의 통합적 연구에서 어떠한 맥락에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파레토의 이론이 맞든 맞지 않든, 파레토는 당시에 이러한 법칙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던(overjoyed) 것으로 보인다.(Persky, 1992) 파레토는 이를 단지 경험적으로 관찰하여 정리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원인도 찾아내려고 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원인보다는 사회적인 원인에 기인해 있었다. 이는 어느 정도 파레토의 엘리트 이론하고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74]파레토는 이러한 소득 분포가 사회의 제도, 사람의 원천적 능력, 그리고 우연[75]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기본적인 능력이나 우연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자원을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어떠한 사회제도든 그 사회에서 성공한 구성원에게는 각 사회마다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보상을 해줄 것이다. 사회제도마다 그 보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소득 분배가 같은 것은 파레토에 따르면 자원을 성공적으로 획득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갖기 위해 끊임 없는 투쟁을 벌이기 보다는 일정 수준까지 획득하면 그 수준에서 만족하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가 유사한 분배 패턴을 갖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이러한 분배 패턴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사회적 힘이 다시 원래의 분배 상태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76]

파레토의 이 분배에 관한 이론이 맞는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왜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부의 불균등한 분배가 마치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단지 경제적으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도입해서 불평등의 기제를 없애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에는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적인 요인들이 다수 존재하며, 그 불평등의 수준도 사회적인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파레토의 이러한 경제사회학적 관점을 수용하게 된다면, 그 어떤 재분배 정책도 결국 사회적 압력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일체의 국가의 정책은 무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그 대신 파레토는 전체의 평균(mean)을 높이는 방법을 권한다.[77] 사회의 평균적인 부의 수준이 상승하면서 부의 분배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절대적인 빈곤선 이하에 위치한 계층의 비율은 많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III.  결론

파레토의 화려한 순수경제학적 성과와 엘리트 이론으로 대표되는 그의 냉소적인 사회학적 성과는 특기할 만하다. 비록 슘페터는 그의 책에서 파레토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후대를 위해 디딤돌을 놓은 경제학자로 평가하지만 순수경제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특히 후생경제학에서 그의 업적은 선구자적이다. 파레토 법칙은 사회개혁에 대해 비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의 엘리트주의 또한 그러하지만 후생경제학 중 재정학과 조세론과 같은 학문 분과에서 조세와 재정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더 나은 분배구조를 만들어 나가는데 그의 업적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일견 아이러니하게 보이기도 한다. 사회학적 업적 또한 경제학의 업적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충분히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78]

 그의 주목할 만한 학문적 성과와 함께 그의 연구활동 또한 현대의 경제학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고 있다. 파레토는 사회를 분석함에 있어서 경제학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회학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또한 그 분석에 있어서 복잡함을 감안하고 사회학에서 인간의 감정에 대한 논의와 비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자신의 학문체계를 완성하려 했다. 비록 그 노력이 뚜렷한 결실을 거두지 못했지만 학문적 한계를 넘어서려 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이는 특히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그 존재 의의가 위협 받고 있는 현대 경제학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79] 파레토가 경제학의 한계를 인정하였던 것처럼 현대 경제학도 현실 분석에 있어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경제학이 예측하고 분석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누어 다른 학문과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제학의 분석 가능 영역을 넓혀주는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경제학에 더 많은 분석 도구를 가져와 분석을 풍부하게 해주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80]또한 경제학이 겸손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의 여왕으로서의 지위를 고집하는 경제학 제국주의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경제학도에 있어서 파레토는 귀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제학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실무능력과 경험도 겸비하였으며 자신의 경험을 학문의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이론가이기도 했다. 파레토는 현실에서 자신이 얻은 경험을 이론에 투사하고 다시 그 이론을 통해 현실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론과 현실이 동떨어지지 않는 모범을 보였다. 그의 귀족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견해도 많은 비판을 받아 왔지만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았다는 측면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이 어떠한가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파레토의 귀족적인 고고함은 실마리를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정도영 역, 서울 :한길사, pp. 210 슘페터의 평가에 따르면 파레토는 공학자로서 경제학의 도구인 수학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무 경험도 풍부하였다. 그러나 그를 경제학자로서 이끈 힘은 그의 젊은 시절의 경제와 사회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이었다. 이는 그가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또 왈라스라는 위대한 경제학자의 후임으로 부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2]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Inc,, pp. 10
[3] Ibid. pp. 11
[4] Ibid. pp. 11
[5]ibid. pp. 214
[6]Ibid. pp.215
[7]S. 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3-4
[8] Ibid. pp.6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슘페터는 무솔리니가 파레토에게 원로원 의원직을 수여하면서 무솔리니 자기 스스로를 빛나게 한 것뿐이라고 파레토를 대변하고 있다.
[9]Coser, Lewis A(2010), 사회사상사, 신용하, 박명규 역, 서울 :Cengage Learning pp. 446
[10]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김문조 외 8인 역, 서울 : 일신사 pp. 483
[11] 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38
[12] Ibid. pp. 35
[13] Ibid. pp. 33
[14]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73
[15] Ibid. pp. 35
[16] Ibid. pp. 35
[17] Paul Dalziel and Jane Higgins(2006), Pareto, Parsons, and the Boundary between Economics and Sociology, American Journal of Economics and Sociology, Vol. 65, No. 1, pp. 111
[18] Ibid, pp. 119
[19] Ibid, pp. 119
[20]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29
[21] Ibid. 파레토는 이것을 지표함수(index functions)라고 지칭하였다.
[22] Ibid. pp.2300
[23]M. McLure(2001), Pareto, Economics and Society-Mechanical analogy, New York : Routledge, pp. 42
[24] Ibid. utility가 개개인이 자신의 후생(well-being)과 특정한 행동에서 오는 즐거운 감정간의 관계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assessment)에 기반한 가중치를 이용하여 ophelimity를가중평균한 것이다.
[25] Ibid. pp.43
[26] Ibid. pp. 91
[27]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33
[28]M. McLure(2001), Pareto, Economics and Society-Mechanical analogy, 힉스는“we talk of Pareto-optimality and not Edgeworth-optimality, and we are right to do so.”라고 언급하였다.
[29]박천익(1998), 파레토 복지경제학, 대구대학교 출판부, pp. 45
[30]벤담의 공리주의는 과거 전제 왕정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출발하였다. 당시 국가가 소수의 귀족과 왕을 위하여 운영되는 것을 비판하여 사회구성원 모두의 효용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논리 하에 모든 개인의 효용을 단순합산하여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다만 여기서 각 개인에게 평등한 결과가 돌아가려면 개인의 효용함수가 모두 동일해야 가능하다.
[31] Ibid. pp.47
[32]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34
[33] Ibid. pp.237
[34]M. McLure(2001), Pareto, Economics and Society-Mechanical analogy, pp.94-95. 이러한 아이디어는 후생경제학에 있어서 일단 파레토 최적을 달성한 뒤 보상 원리에 따라 배분함으로써 원하는 분배 상태를 이끌어 낸다는 Kaldor-Hicks 기준과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35]J.A. 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34 왈라스가 자신의 순수경제학 요론(Elements d’economicpolitique pure)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으로 모든 다른 상품의 가치를 그것으로써 표현하는 가치척도의 기능을 가진 기준재를 말한다. 이것은 가격표시기능을 가질 뿐 화폐의 다른 기능, 예를 들면 가치 저장 기능 등을 가지지는 않으므로 화폐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36] Ibid. pp. 238
[37]박천익(1998), 파레토 복지경제학, pp. 24, 85
[38] Ibid. pp.25, 92-97
[39] Ibid. pp. 102-111
[40]Ibid. 슘페터의파레토에 대한 전반적 평가이다.
[41]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Inc.
pp. 37
[42]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김문조 외 8인 역, 서울 : 일신사 pp. 463
[43]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Inc.
pp. 37
[44]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김문조 외 8인 역, 서울 : 일신사 pp. 466
[45]Ibid. pp. 465
[46] Ibid pp. 465
[47] Ibid. pp. 465
[48] Ibid. pp. 466
[49] Ibid. pp. 466
[50] 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49
[51]Ibid. pp. 49
[52] Ibid.pp. 41
[53]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67
[54]S.E. Finer, Translated by D. Mirfin(1966), Vilfredo Pareto: Sociological Writings, pp. 279
[55]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 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70
[56]박천익(1998), 파레토 복지경제학, pp.25
그러나 경제학을 보다 분명하고 온전하게 다듬기 위해서는 이러한 그의 학문적 시각은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사회학에 관한 관심과 이해를 경제학과 연관 지워보려는 노력을 했다. 파레토는 사회학의 도움이 없는 경제학은 동태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학문적 바탕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57]Patrik Aspers(2001), Crossing the Boundary of Economics and Sociology: The Case of Vilfredo Pareto, American Journal of Economics and Sociology, Vol. 60, No. 2, pp. 519
[58] Ibid. pp.522-523
[59]Ibid. pp.524 에서 파레토는 다음과 같이 순수경제학과 응용경제학의 차이를 예시를 들어 구분하고 있다.이런파레토의 구분은 현대 경제학에 있어서 실증 경제학과 규범 경제학의 구분을 연상하게 한다.
“Pure economics determines the function of money in the economic sphere of life. Applied economics describes monetary systems now in existence, monetary systems of the past, their transformation and so on.”
[60]파레토는 사회학을 두고 residual이라고 규정하였다(1966: 106-07)
[61]Ibd. pp.524
[62]Ibid. pp.519
[63]Ibid. pp.527 Economic Sociology Logical Sociology는 파레토 본인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Aspers가 파레토의 저작에서 추론해낸 분야이다.
[64]논리적이나 비경제적인 분야로 파레토는 군사적, 법적, 과학적 행동을 예로 들고 있다.(Aspers 2001)
[65] Ibid. pp.528-529
[66]파레토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비논리적이라고 본 데에서도 신고전학파와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미시경제적 부분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적 부분에도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을 가정하여 제약 조건하에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개인이 행동하고 이 개인의 행동을 총합하여 거시 경제적 행태를 관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파레토에게서 합리적 인간(논리적 인간)은 순수경제학 분석에 국한되며 그 이상은 신고전학파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방법을 통해서 분석이 불가능하다.
[67] Charles H. Powers and Robert A. Hanneman(1983), Pareto's Theory of Social and Economic Cycles: A Formal Model and Simulation, Sociological Theory, Vol. 1, pp. 60-63, Turner, Jonathan H, Beeghley, Leonard, Powers, Charles H.(1997), 사회학이론의형성(The emergence of sociological theory), pp. 483-488 
[68]이는 케인즈(J. M. Keynes)금리생활자의 안락사라는 과격한 주장을 생각나게 한다. , 자본주의의 활력을 위해서는 금리생활자 계층의 몰락이 필요한 것처럼 파레토의 자본주의 이론에서도 경기 팽창을 위해서는 이들 계층의 퇴진과 speculator계층의 등장이 필요하다. speculator 계층도 케인즈의 animal spirit을 연상시키는 개념이다
[69]Charles H. Powers and Robert A. Hanneman(1983), Pareto's Theory of Social and Economic Cycles: A Formal Model and Simulation, pp. 61
[70]Joseph Persky(1992), Retrospectives: Pareto’s Law, Th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Vol. 6, No. 2 (Spring, 1992), pp. 182
[71] Ibid. pp. 183
[72]Ibid. pp. 184
[73]J.A.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 218
[74]Joseph Persky(1992), Retrospectives: Pareto’s Law, pp. 184
[75]Bruce H. Mayhew and Paul T. Schollaert(1980), Social Morphology of Paretos Economic Elite, Social Forces, Vol. 59, No.1, pp. 25-43 이 연구에서 저자들은 통계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정한 조건 하에서 각 개인의 소득이 어떻게 변동하는지를 살펴 보았다. 통계 시뮬레이션 결과 높은 확률로 항상 소득 분포의 상당수를 가지는 엘리트 계층이 단지 우연에 의해서 등장하였다. 저자들은 이에 덧붙여 파레토는 단지 우연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회적 요인이 소득 분포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으므로 엘리트 계층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76]Joseph Persky(1992), Retrospectives: Pareto’s Law, pp. 184-185
[77]Ibid. pp. 185
[78].A.Schumpeter(1998), 10대 경제학자, pp.248
[79]영국 여왕이 영국의 경제학자들에게 경제학이 왜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였고 이에 대해 영국 경제학자들이 답변한 “Letter to the Queen”은 유명하다.
[80]실제로 노동시장론에 있어서 경제사회학적 설명 방법이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