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Post Keynesian Economics(5)-Production

안녕하세요. 원래 이 블로그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었는데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시덥잖은 뻘글로 지면을 많이 채워넣었습니다. 이제 로스쿨 입시도 모두 끝났고 본연의 목적에 좀더 충실하기 위해 연재를 재개할까 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 연재를 할 때에는 꼭 술이 들어가야 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오늘 하는 부분은 굉장히 기술적이라면 기술적인 부분입니다.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이론'입니다. 생산이론이란 대개 기업의 생산함수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기업의 생산함수란 투입요소에 따른 산출량을 나타내는 함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보통 투입요소로 노동과 자본을 듭니다. 각각 알파벳으로 L과 K라 하죠. 자본(capital)을 K로 나타내는 이유는 아마 소비(consumption)과 차이를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독일어로 자본은 Kapital이죠.

신고전학파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로 생각하는 생산요소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동, 자본, 토지 입니다. 보통 토지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지대"부분에서 다루게 됩니다. 토지는 주어진 수량만이 존재하므로 생산량에 따라 그 투입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고정되어 있지요. 그래서 분석 대상으로 유의미한 것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입니다. 자본의 가격은 이자이며 노동의 가격은 임금이고 토지의 가격은 지대입니다. 그리고 각 생산요소의 가격은 생산요소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므로 생산요소가 생산에 기여하는 만큼 주어지게 됩니다. 즉 노동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인 임금은 노동이 생산물에 기여한 만큼 책정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신고전학파 이론에서는 분배문제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리게 됩니다. 각 생산요소의 제공자인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는 자신이 생산에 기여한 몫만큼 받아가면 되는 것이고 이에 대해 신고전학파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는 우리들이 잘 알 것입니다.

신고전학파의 생산함수에서 기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비용극소화+이윤극대화입니다. 흔히 기업이 비용만 극소화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기업의 목표는 이윤극대화입니다. 이윤=수입-비용 이지요. 둘 사이의 차이가 크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생산요소의 수량과 가격은 반비례합니다. 희소한 생산요소는 그 가격을 더 받게 되는 것이지요. 노동가능 인구가 적으면 임금은 올라가고 자본이 희소한 곳에서는 이자율이 높아지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 경제 발전기인 60~70년대 은행의 공식 이자율은 낮았지만 이는 관치금융으로 인한 것이었고 실제 돈을 빌릴 수 있었던 사채 시장의 이자율은 50%였습니다. 자본이 희소했던 탓이지요. 때문에 은행 문턱이 천국 문턱보다 높다는 말이 나왔고요.

신고전학파의 생산함수는 기업이 노동과 자본의 비율(K/L)을 이 생산요소 가격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생산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신고전학파의 가정에 따르면 생산기술은 자본과 노동의 가격의 변동에 따라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언제든지 바꾸어가며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자본과 노동이 대체 가능한 것이지요. 노동의 가격인 임금이 비싸고 자본의 가격인 이자율이 싸면 노동 고용을 줄이고 자본 고용을 늘리면 됩니다. 공장을 기계화 하는 것이지요. 반대의 경우엔 거꾸로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학파는 이에 대해 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씁니다. 한번 정한 생산기술, 다시 말하자면 노동과 자본의 투입비율은 어느 정도까지 바꾸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공정은 상당히 기술집약적인데 거기에 자본 가격이 비싸졌다고 사람으로 때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산업이 이와 같은 형태를 가졌는데 맘대로 생산기술을 바꾸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주장입니다. 특히 개별기업에 대해서는 이런 가정이 적용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이론에 대한 몇 가지 견해를 살펴보겠습니다.

(1)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은 이러한 '대체'에 별로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비율이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시작하지요. 이 경우 노동과 자본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자본이 일정하게 존재할 때 노동 고용을 아무리 늘려도 생산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라인이 한정되어 있는데 아무리 많은 기술자를 투입해도 자동차 생산량이 늘지 않는 것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포스트 케인지언은 자율적 수요(autonomous demand)에 중점을 둡니다. 거시경제에서 수요란 소비+투자를 의미합니다. 소비재 수요와 자본재 수요를 말하는 것이지요.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 소비는 소득에 의해 결정되고 투자는 이자율의 함수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이자율과 소득 이외에도 거시경제에서의 수요측면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경제 외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3)no use of aggregated capital: 이는 자본 총계를 표시하는 신고전학파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본을 단일한 수량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는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를 여기에 소개하는 것만 해도 많은 지면을 잡아먹을 것이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경제학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니 궁금하신 분은 찾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소위 "자본논쟁"이라고 합니다. 자본을 단일한 수량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가정 아래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다부문 모형을 사용합니다. 즉 각각의 자본재도 경제 내에서의 하나의 생산물로 보아 행렬 모형(연립방정식 모형)으로 만들어 각 재화가 투입되어 다른 재화를 만드는 모형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행렬 모형을 표현하자면 복잡하니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한 재화의 가치=투입된 모든 재화의 가치+잉여(=신투자+소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상품의 가치 내에는 그 상품을 만드느라 사용된 다른 상품(자본재)의 가치와 우리가 투입한 상품의 가치 이상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투입한 상품의 가치 이상의 가치 즉, 잉여는 우리가 소비해 버리거나 투자하는 형태로 실현되는 것입니다.(이렇게 말해도 어렵네요...)

연립방정식 모형이 되면 수요 공급함수로 어떤 상품의 가격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요 공급함수란 단순히 그 상품의 수량과 가격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인데 포스트 케인지언의 생산모형을 따른다면 가격=생산에 투입된 해당 재화와 다른 재화의 가치+잉여이므로 단순한 수량-가격 관계로 표현할 수 없게 되죠. 그래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수량-가격 관계의 수요공급함수를 쓰지 않습니다. 다만 공급과 수요의 개념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4) 각각의 상품에 대해서 한 상품의 총 산출량=중간재로 사용된 상품량+최종재로 사용된 상품량 으로 표시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이지요.

(5) 중간재의 가치+부가가치=생산물의 가치. 이도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6) 산출량과 가격은 수요 공급 함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많은 외부요인을 고려해야한다고 보기 때문에 수요 공급 함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느 가격에 해당하는 어떤 수량은 그 시점에서 경제적, 경제외적 상황에 의해 우연히 결정된 것이지요.

뭔가 신고전학파 생산이론과 대비하여 설명하였어야 했는데 그러면 너무 주저리주저리 길어질 것 같아 일단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생산이론만을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수학적 appendix가 있으나 굳이 써야할 것 같지 않아 생략하였습니다. 오늘도 짧지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만.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Shoe Collector Nikolay

으어 벌써 1차 발표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내일 이 시간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 궁금하네요. 오늘 글은 좀 가벼운 주제입니다. 신발 수집이 취미인 저의 의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요. 긴장 되서 잠도 안 오는데 가볍게 쓸까 합니다.

신발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요 초등학생 때부터 모종의 집착(?) 같은게 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레고도 사야했고 게임 씨디도 모아야 했고 더더군다나 부모님은 신발이 닳기 전엔 안 사주시는게 당연했기 때문에 그냥 신고 있던 신발이 다 닳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아마 처음으로 나이키에서 나오는 농구화를 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땐 기분이 무척 좋았죠. 그리고 조던 시리즈로는 처음으로 에어조던 9을 샀습니다. 흰검이었고 얼마 전까지 거의 누더기가 된 채로 신발장에 있다가 버려진 것 같네요. 에어조던 9 흰검은 다음과 같은 모양입니다.
sneakersection.com에서 이미지 발췌
 
여튼 이걸 잘 신고 다니다가 저도 중학교 때부터는 이래저래 돈을 모으게 되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배려로 스스로 통장관리를 하게 되면서 집과 독립되어서 따로 주머니를 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통장 비밀번호를 부모님 모르게 해놓고 현금 카드를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바로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썼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아마 옥션에서 폼포짓 프로 블루를 샀던 것 같아요.














폼포짓 블루는 당시 학교에 신고 다니기에 조금 버거울 정도로 화려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 옥션은 신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짭션이라고 불리우며 멸시당하지만 옛날만 해도 농구화를 구하려면 옥션에서 구하거나 혹은 카페의 중고 사고팔기 게시판이 전부였습니다. 옥션만 해도 에스크로 거래로 신뢰할 수 있었지만 중고 장터는 정말 판매자의 신용으로 거래하는 것 말고는 없었죠. 전 여태껏 한번도 사기 당한 적이 없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컬렉션은 좀더 늘어났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에게는 조던 18.5를 받고 외할머니가 르브론 2를 사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르브론 2는 예쁜데다가 발도 편해서 몇 년 전에 다른 색으로 또 사서 신고 있습니다.



당시 농구 경기를 보면 상당수의 선수가 르브론 2를 신을 정도로 인기가 좋아서 "국민 농구화"라 불리곤 했습니다. 에어도 물컹물컹 좋아서 엄청 신었는데 결국 에어가 터져 버려서 주저앉아서 버리게 되었죠. 그래서 그 안타까움에 대학교에 와서 다시 사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샀던 것은 당시 신인이었던 카멜로 앤써니의 시그네이쳐 슈즈(한 선수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신발)인 멜로 1.5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갑피에 라인이 예쁜 신발이었죠.
 
멜로 1.5는 발도 편하고 그랬는데 이후 대학 들어 와서 자금 사정으로 팔아버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기 팬던트도 걸려 있는데 그 팬던트가 아마 어딘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무언가 테마를 정하거나 라인을 정해서 모아야 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예쁘면 사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했죠. 그러다 보니 별의별 쓸 데 없는 것도 사고 지금은 애물단지가 된 신발들은 대개 고등학교~대학 초년생 시절, 돈이 많지 않았을 때 계획성 없이 샀던 것들입니다. 그 때는 정말 왜 그랬는지 후회되네요. 조던 8을 헐값에 살 수 있는데도 옆에 있던 VC4(빈스카터의 시그네이쳐 모델)을 사질 않나...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다루는 돈의 액수가 좀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세뱃돈은 물론이고 용돈부터 장학금을 받을 경우 장학금의 부스러기까지 돈이 쏠쏠하게 모였죠. 전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광화문 교보에 달려가 신작 게임을 사는 한 편 호시탐탐 신발을 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빈발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신발을 "모은다"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나타내셨고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신발을 사오는 날엔 부모님하고 말도 안 할 정도였죠.
 
대학교 때까지 부모님과의 갈등은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시간이 싫었습니다. 전 눈치 보면서 신발 상자를 집에 가져오고 부모님은 화를 버럭 내시고 전 또 거기에 대들고... 어떻게 해결되었냐고요? 간단했습니다. 전혀 부모님이 상관할 수 없는 돈으로 신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장학금, 과외비, 월급... 결국 부모님은 제가 대학교 2학년이 지나면서 백기를 드셨고 신발 모으는 것에 대해 크게 나무라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취미"로 인정 받았달까요? 이제는 주로 "공간"이 문제가 됩니다. 사실 수납 공간이 좀 부족하긴 하거든요... 나무로 따로 신발장을 짜든지 해야하는데 집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초년생까지는 "남들 신는게 부러워서"산 신발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획없이 막 샀던 거죠. 그 때 산 것 중에 그래도 잘 샀다고 생각 되는 신발이 있습니다. 줌 20-5-5인데 르브론의 경기 성적을 나타낸 거라는데 까먹었네요.
 
사실 농구화의 치명적 단점이 있는데 "통풍"입니다. 여름엔 땀이 좀 차죠. 근데 이 모델은 통풍이 워낙 잘 되서 땀이 안 차는데다가 착용감도 좋았습니다. 결국 다른 색깔로 똑같은 모델을 또 샀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신발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컬렉션을 조던으로 시작한게 아니라 르브론으로 시작했네요. 르브론 2부터 꾸준히 사서 3, 4, 5, 6, 8, 9, 10까지 사모았습니다. 7과 11은 제 취향과 안 맞아 안 샀지만요. 당시 조던은 뭐가 뭔지도 몰랐고 그나마 매년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는 르브론 시리즈가 접근성이 좋았습니다. 조던은 당시도 리트로(재발매)하던 시절이라 정확하게 언제 나오고 어떤 모델이 나오는지 모르면 모으기 힘들었죠. 그래서 조던은 제가 풋셀에 가입하고 대학교 들어와 돈을 스스로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모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초기 컬렉터 때의 얘기입니다. 다음 편에선 제 소장품 사진과 대학교 시절 모았던 스토리 등등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