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7일 일요일

"벌거벗은 재벌님"(박상인 저) 서평 - 재벌문제와 재벌개혁에 대해

I. 재벌의 정의와 사회적 고정관념
           재벌은 오랫동안 한국경제의 화두였다. 50여 년 전엔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인해 국회에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SK 최태원 회장의 실형 확정까지 많은 논란을 일으켜 왔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많은 부정부패와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었음에도 재벌문제 해결에 대한 시도는 번번히 큰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여러 반대 의견에 부딪혀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하였다. 재벌은 여전히 대한민국 경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던 1986년부터 2002년까지 각종 정책이 실시되었음에도 재벌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증가하였다.[1]
재벌의 정의
           재벌문제에 대해 논하기 전에 재벌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할 것이다. 재벌은 단순히 대기업 혹은 대기업 집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벌거벗은 재벌님』(박상인), 그리고 『경제법』 (권오승)에 의하면 재벌은 총수가 있는 대규모 기업 집단을 의미한다. 총수가 없는 대규모 기업 집단으로는 KT, POSCO 등이 있는데 이러한 대규모 기업 집단은 재벌이 아니다. 즉 재벌은 기업 집단에 대한 인적(人的)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 집단을 의미하며, 2차대전 이후 인적 지배를 청산한 일본의 게이레츠(系列)와는 이러한 점에서 구분된다. 재벌의 인적 지배는 차후 서술한 재벌 문제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재벌에 대한 고정관념 신하들의 요설
           박상인은 『벌거벗은 재벌님』에서 재벌개혁을 저지하는 주장을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신하들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의 신하들은 임금님이 재단사에게 속아 벌거벗고 있었음에도 마치 옷이 있는 것 마냥 거짓말을 한 것처럼 신하들이 재벌문제의 핵심을 흐리기 위해 요설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요설들을 정리해보면 몇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먼저 신하들은 재벌문제를 대기업의 문제로 치환하고 다시 중소기업문제와 대비하면서 대기업이 장점도 있으며 대기업 규제를 하기보다는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피터팬 증후군에 돌리고 있다. 그리고 가족 경영이 전문경영인에 의한 경영보다 우수함을 주장하며 재벌문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문제를 얼버무린다. 거기에 이념적 색채를 더해 재벌개혁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며 좌익의 주장이라고 매도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재벌로부터 복지 재원을 위한 세금을 얻어내는 대타협을 주장하고 출자규제가 투자를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의 신하 혹은 신하 아닌 신하들의 요설은 재벌문제의 핵심에서 빗겨나간 주장들일 뿐이다. 일단 재벌문제는 총수 개인의 인적 지배와 세습, 경제력 집중의 문제이며 대기업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또한 중소기업 문제도 대기업과 관련된 문제라기 보다는 재벌위주의 경제구조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재벌개혁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재벌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재벌에 대한 동족(同族) 지배가 문제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하려는 주장일 뿐이다. 가족경영이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연구결과마다 그 기준이 상이하여 일반화 하기 어렵고 또한 단일 기업에 대한 연구결과를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재벌 내에서는 오히려 지배권의 편법승계와 터널링 등으로 인해 가족 경영의 폐해가 심각하다. 재벌들의 여러 편법∙불법적 행위는 반기업 정서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으며 재벌개혁도 반기업적∙좌파적인 것이 아닌, 시장경제체제를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기 위한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의 경영권세습∙방어의 보장과 복지재원을 맞바꾸는 것은 총수 일가의 세금을 면제해주고 대기업 집단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국가가 주도하는 배임에 불과하며 출자제한으로 투자가 위축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출자와 투자 간에 실증적으로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우리 사회에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재벌문제에 대한 요설들을 저자는 하나씩 반박하고 있다.

II. 한국사회에서 재벌의 행보
           재벌이 총수 일가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한국 사회에서 재벌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재벌들은 특히 지배권 승계 과정에 있어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법정공방까지 갔다. 『벌거벗은 재벌님』에서는 한국 경제에서 비교적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삼성, SK, 현대의 사례를 들며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행보를 보여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지배권 승계 1단계-종잣돈으로 종자기업 지배하기
           삼성과 SK, 현대의 사례를 보면 지배권 승계 과정은 3단계로 분류된다. 첫 단계는 종잣돈으로 종자기업을 지배하는 과정이다. 지배권 승계 과정의 시작으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씨에게 61억원을 증여하고 이재용 씨는 61억원을 종잣돈으로 하여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매입하고 상장 후 차익을 얻는 과정을 통해서 전환사채를 통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된다. SK의 최태원 회장은 선친의 유산을 상속 받아 28천만원으로 SK C&C의 주식 70%를 매입한다. 현대의 정의선 씨는 아직 3세 승계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비슷하게 현대글로비스의 주식의 약 60%15억원에 확보한다.
지배권 승계 2단계-종자기업 키우기
종자기업을 지배한 뒤엔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종자기업을 키우기 시작한다. 부당내부거래의 형태는 삼성의 경우 종자기업인 삼성 에버랜드가 핵심계열사인 삼성생명의 주식을 헐값으로 인수한 뒤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현대와 SK의 경우 종자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종자기업을 키워나갔다.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종자기업의 수익률이 200%를 초과하는 등 정상적인 기업활동의 결과라고는 볼 수 없었다.
지배권 승계 3단계-그룹 전체의 세습
종자기업을 키운 이후에는 재벌 그룹 전체를 세습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삼성의 경우 이재용 씨가 가진 주식의 가치가 처음의 61억원과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나 이재용 씨 등 삼성가의 3세들은 약 2.1조원의 이익을 보았고 삼성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확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환사채의 전환가격이 부당하게 낮아 문제가 되었지만 법원은 삼성의 이러한 불법적 세습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 SK의 경우 삼성과 종자기업 불리기와 종자기업 중심의 지배구조 확립에 있어서는 그 형태가 유사하나 지주회사 형태를 활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지주회사 외부의 계열사의 지주회사 주식 보유가 가능하다는 맹점을 활용하여 지주회사 위에 종자기업을 얹는 방식으로 지배권을 승계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시 배임과 분식회계 등 법적인 문제가 불거졌으나 법원은 역시 면죄부를 주었다. 현대의 경우 아직 지배구조가 확립되지 않았으나 문어발식 확장과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현대 글로비스를 중심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거나 지주회사 방식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II. 시장경제체제와 재벌문제
1. 시장경제체제의 특징
           재벌이 위와 같은 편법∙불법적인 지배권 승계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한국경제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떠한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한국경제가 어떠한 경제체제를 택하고 있고 재벌문제가 그러한 경제체제의 작동에 어떤 측면에서 걸림돌이 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순서가 될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의 필요성과 원리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제체제는 현재로써는 시장경제체제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벌거벗은 재벌님』에서 저자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계획경제가 이기적 개인과 비대칭적 정보 때문에 엄청난 비효율을 낳았다고 지적하며 현재의 우리에게는 시장경제체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시장경제란 각 경제주체의 활동이 시장에 의하여 조정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경제법, 권오승 著). 3의 계획자 없이도 시장에서 균형이 생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왈라스L. Walras, 애로우 K. Arrow, 드브뢰 G. Debreu 등에 의하여 그 존재가 입증되었다. 하지만 시장경제에서의 균형의 존재가 입증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원활한 시장경제체제 작동의 요건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시장거래가 제도화되고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맥밀런 J. MacMillan 교수는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다섯 가지 요소는 원활한 정보 유통, ②잘 보호된 재산권, ③개인들 사에의 약속에 대한 신뢰, ④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삼자에 대한 부작용의 최소화, ⑤경쟁의 활성화 라고 할 수 있다. ①은 소비자와 공급자간의 정보가 대칭적이어야 함을 의미하며 은 시장경제체제를 위한 법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④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성의 문제에 해당한다. ⑤는 시장경제체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공동행위(카르텔)와 같은 반시장적인 행동을 막아야 함을 의미한다. 다섯 가지 요건 중 특히 는 개인의 이기심을 추구한 결과가 시장경제의 작동을 오히려 방해하는 상황으로서 사회적 이익과 정합하는 개인적 이기심만이 사회에서 정당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시장경제체제에 역행하는 재벌
           헌법에서는 시장경제체제를 국가의 주된 경제체제로 채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의 경제성장기를 통틀어 시장경제체제만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성장의 전반기에는 오히려 계획경제 시스템이 적절했으며 이는 관 주도의 재벌 위주 성장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의 역량이 정부의 역량보다 훨씬 우수하며 계획경제적 요소는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벌개혁 없이는 이러한 시장경제체제의 정립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현대 시장경제체제에서 사유재산권과 주식회사 제도는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재벌의 존재는 그 근간을 모두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의 침해
           사유재산제도에 있어 동등한 개인간의 사유재산권 보장만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강자에 의한 약자의 사유재산제도 침해도 시장경제체제의 원활한 작동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도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함으로써 약자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횡령과 배임 등 범죄행위가 있었음에도 형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으며 부당내부거래와 같은 행위는 법의 규율도 거의 받고 있지 않다. 이에 더해 손해배상 제도가 발달하지 않음으로써 경제적 약자들이 강자의 사유재산권 침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구제 절차를 취하지 않는 상황이 사유재산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데 일조하고 있다.
주식회사 제도 흔들기
           주식회사 제도에 있어서도 재벌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식회사는 대자본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있어 핵심적인 제도이다. 그러나 경영자나 최대 주주의 분식회계, 횡령, 배임 등의 행위는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써 미국의 경우에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러한 행위에 대해 엄벌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법원이 오히려 SK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전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재벌의 시장경제체제 교란행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만이 잇따랐다. 주식회사 제도와 시장경제체제를 뒤흔드는 범죄행위에 대해 둔감하고 눈감아주는 사회는 사이비 시장경제체제만을 낳을 뿐이다.
경제력 집중의 문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재벌문제의 핵심이다. 일단 경제력 집중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대규모 기업집단이 국민경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국가경제의 시스템 리스크가 될 수 있고 집중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른 경제주체와의 경쟁에 있어서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력 집중은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문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재벌개혁의 시도들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그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주식회사 내에서 경영자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외이사 제도가 오히려 학계와 관계, 사법계에 당근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견제기능은 유명무실해진 것이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더해 입법, 사법 과정에서도 재벌 친화적인 결정이 지속적으로 내려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를 망가뜨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에 있어 방해가 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유재산권 침해와 주식회사에 대한 범죄행위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한국경제에 점점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적∙불법적 지배권 승계∙강화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여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또 이에 의한 과도한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벌의 변칙적 지배권 승계를 위해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또 집중된 경제력으로 다시 변칙적인 지배권 승계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지배권 승계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다. 하지만 이에 더해 재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경제력 집중의 해소가 동반되어야 재벌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IV. 재벌개혁의 연혁과 앞으로의 방안
1. 재벌개혁의 연혁
재벌개혁의 시작
           위에서 언급한 재벌 문제에 대해 그 동안 국가와 사회는 손을 놓고 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1차 개정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1992년 제3차 개정에서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자기 자본의 200% 이내로 제한하는 채무보증 제한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1998년에는 채무보증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처음 도입 당시 순환출자구조를 규제당국이 파악할 수 없어 대안적으로 도입한 제도로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지만 재벌들의 줄기찬 반발로 유명무실해진 후 2009년 폐지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시장 개혁 로드맵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권 세습이 본격적으로 사회문제화 되면서 경제력 집중의 억제를 위주로 한 재벌 규제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규제로 규제의 패러다임이 넘어갔다. 노무현 정부는 시장 개혁 3개년 로드맵을 발표하여 지배구조 개선을 꾀하였다. 이에 따라 기업 집단의 소유 지배구조에 관한 정보가 기업에 공시의무를 강제함으로써 매년 공개되었다. 지배구조의 개선은 이익청구권과 의결권의 괴리를 줄이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후속적인 조치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예외규정을 통해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려 오히려 성과 없이 규제 수단 하나를 잃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안에는 제1차 개정 때 금지한 지주회사 제도를 허용하고 일정 정도 제한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한이 지나치게 완화되어 지주회사 수가 급증하고 오히려 재벌세습에 도움이 되었다.
정보공개제도와 견제 시스템의 도입
           오히려 재벌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가는 가운데 정보공개제도는 기업 집단으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더 많은 지배구조 관련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공시 내용에는 회사의 상호출자 관련 사항 등 지배구조 관련 정보뿐만 아니라 기업 집단 내의 내부거래현황 등도 포함하도록 하였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상호출자 제한 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를 분석하여 매년 공개하도록 하였다. 정보공개제도 외에 소액 주주의 권한 강화와 사외 이사 제도나 감사 위원회 제도와 같은 견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시스템만이 잘 구비되었을 뿐, 그 운영에 있어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견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황제와 같은 재벌 총수의 존재가 이러한 시스템의 작동을 막고 있는 현실에서 재벌개혁에 있어 견제 시스템의 도입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2.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역대 정부들이 시행해 온 재벌에 대한 규제책은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화두였지만 아직 뚜렷하게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변칙적 지배권 승계에 대해 규제를 가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규율
박상인은 지금까지 시행해온 정책들이 재벌문제의 핵심을 빗겨 나가 있으며 이로 인해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지배권 세습의 첫 단계에서 일어나는 종자기업 지배와 두 번째 단계인 종자기업 키우기에 대한 규율은 아직 미비한 상태이다. 종자기업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데서 발생한 불법과 편법을 바로잡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특히 독점규제법과 관련하여 법이 부당지원 행위를 제대로 규율하지 못하여 부당지원 행위를 통해 종자기업을 키우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현행법령에는 부당지원 행위 금지와 관련하여 세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1. 부당지원행위가 불공정 거래 행위와 묶어서 규율되고 있기 때문에 경쟁제한성을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2. 부당내부거래의 위법성 판단 기준에서 현저함의 기준이 모호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3. 과징금 제도에 있어 부당지원 행위의 혜택을 입은 종자기업이나 승계자들은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다.
저자는 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규제를 실효성 있게 만들기 위해 일단 과징금 부과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과징금의 부과 대상은 지원 받은 계열사와 해당 계열사의 주주가 되어야 하며 과징금 산정 또한 주가 상승으로 인한 자본이득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부당지원을 받은 계열사의 주주들은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보다 주가 상승으로 훨씬 더 큰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과 같이 과징금 산정이 지원을 계열사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원받은 계열사의 영업이익 증가분과 주주의 자본이득을 기준으로 과징금이 산정되어야 한다. 또한 세법상에서도 영업이익의 일부에 증여세를 부과하기 보다는 자본이득에 증여세를 부과하여야 한다. 그리고 부당이득의 수혜자인 총수 일가의 보유 주식을 강제로 처분하도록 함과 동시에 원천적으로 부당지원 행위가 터널링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순환출자금지와 지주회사제도 개선
순환출자는 가공자본을 만들어 총수 일가가 재벌 집단을 지배하는데 핵심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단순히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해서는 지배권 승계를 통제할 수 없다. 현재의 상황에서 재벌 총수 일가는 꼭 순환출자가 아니더라도 기업 집단을 승계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재벌 집단의 승계자들은 종자기업이 기존 순환출자 고리상의 핵심계열사의 최대주주가 되게 하는 것만으로도 기업 집단 전체를 승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규순환출자만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순환출자구조에 대해서도 해소 내지 의결권 제한이라는 규제를 가해야 한다.
재벌의 지배구조 재편에 지주회사제도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풍선효과로 재벌들은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순환출자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이 개선된 상황이나 지주회사의 맹점에 대해서는 아직 인식이 부족하다. 재벌이 지주회사 형태로 지배구조를 전환하는 것은 기존의LGSK의 사례를 보았을 때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배구조를 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해서 기존의 변칙적인 지배구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지주회사 전환과 동시에 종자기업을 통한 편법적 승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위의 SK사례에서도 지적되었던 사항이다. 현행 지주회사 제도에서 지주회사는 지주회사 내의 자회사를 제외한 계열사의 주식은 취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주회사 밖의 재벌 계열사는 지주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있으므로 여전히 변칙적 지배권 승계가 가능하다. 따라서 계열사의 지주회사 주식 보유를 금지하고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지주회사 지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행제도는 일정 요건만 만족하면 지주회사를 지정하는 방식이나 재벌 혹은 기업 집단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하여 지주회사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
금융차명거래 금지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금융차명거래를 눈감아주는 것은 법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재벌 총수 일가는 지배권 승계과정에서 금융차명거래를 이용하여 성공적으로 지배권을 승계하였고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85천억원을 차명으로 상속 받고 상속증여세를 전혀 내지 않았다. 부당지원 행위와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가 잘 이루어져도 금융차명거래가 규율되지 않는다면 지배권의 변칙적 세습은 여전히 가능하다. 금융차명거래는 단속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단속당국의 단속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하며 금융차명거래를 적발해낼 수 있는 좀 더 강력한 수단, 예를 들면 자진신고 제도나 일정액이상 거래 신고 의무 도입 등을 도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경제력 집중의 해소 방안
           순환출자금지는 재벌의 가공자본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경제력 집중을 완화시킬 수 있다. 상호출자가 가공자본 형성에 이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환출자도 가공자본 형성에 이용되고 있으므로 상호출자금지를 하는 상황에서 순환출자를 금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더군다나 순환출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 정보가 공개되고 있으므로 금지는 실질적으로 가능해졌다. 위에서 언급한 지주회사제도 규제도 경제력 집중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재고해야 한다. 현행의 규제는 지나치게 안이하여 오히려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그 동안 지주회사의 수평적, 수직적 확장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 재벌 그룹은 계열사를 늘리는데 용이해졌다. 지주회사제도를 이용한 기업의 확장에 대해 최소지분율 규제가 오히려 완화되는 바람에 지주회사제도의 원래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그리고 출자단계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 자회사 단계까지만 허용하던 것을 증손회사까지 허용함으로써 수직적 확장도 쉬워졌다. 이러한 규제를 원점으로 돌려서 최소지분율을 50%이상으로 환원하고 원칙적으로 2단계만 수직적 확장을 할 수 있게 해야 지주회사제도의 원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지주회사 지정제도를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개선하여야 한다. 또한 지주회사로 전환한 재벌과 그렇지 않은 재벌에 대한 비대칭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비 지주회사 재벌 그룹에 대해 더욱 강력한 규제를 가함으로써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유도하여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규제들 이외에도 경제력 집중 해소를 위하여 다른 규제들이 함께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질서 정연한 도산 계획의 제출을 의무화 하는 것이다. 이는 원래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정책이다. 도산할 경우 국가경제에 큰 파급을 줄 수 있는 금융기관은 도산 시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에 빠져 경영을 방만하게 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규제당국은 질서 정연한 도산 계획을 제출하게 하여 사전 규제를 하고 있다. 재벌은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경제에 있어 리스크를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규제도 생각해볼 법하다. 또한 시스템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금산분리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대규모 기업집단이 그 자금력으로 개별시장에서 진입장벽을 세우는 행위를 독점규제법을 통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
정책집행을 위한 이행기적 조치
           재벌개혁을 위한 제도들을 시행함에 있어서 재벌의 기존 지배권을 일거에 박탈하는 등의 방법은 재벌개혁의 안착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박상인은 말한다. 일단 기존의 지배권은 인정해주되 앞으로 지배권의 변칙적인 승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주회사제도로 전환에 유예기간을 두고 전환한 기업과 전환하지 않은 기업을 분리 규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지주회사제도에 대한 맹점을 보완하여 일단 지주회사제도를 개선한 뒤 재벌 집단을 기업 집단 단위의 지주회사로 개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행기적 조치의 목표가 될 것이다.
직접적인 경제력 분산[2]
           재벌 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다른 조치로는 직접적인 경제력 분산이 있다. 경제력이 분산된 재벌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예전과 같은 막강한 정치∙사회∙경제적 영향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지배권 승계를 이런저런 요설로 감추려 하는 신하들도 줄어들 것이고 우리 사회가 재벌개혁에 성공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직접적인 경제력 분산을 위해 사용 가능한 정책 수단 중 하나는 독점규제법 상의 기업결합 금지 조항이다. 독일의 GWB상의 기업결합의 규제가 콘쩨른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논의는 기업결합과 기업집단이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GWB의 기업결합 상의 지배권(Kontrolle)은 우리 독점규제법상 기업집단의 핵심적 표지인 사실상의 지배에 상응한다. 따라서 기업결합 금지를 기업집단에도 적용하여 특히 비관련 다각화로 몸집을 키워나가는 한국의 재벌들이 더 이상 집중된 경제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결합의 금지를 활용하는 방안 이외에도 계열편입에 대한 실질심사제도를 도입하여 기업결합으로 규율할 수 없는 계열편입에 대하여 경쟁당국이 심사하는 방법이 있다. 경제력 집중과 경쟁제한성 등을 판단하여 계열편입이 경쟁규범에 반한다면 편입을 금지하여 재벌의 확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독점규제법적인 해결책 외에 직접적으로 재벌을 분할∙분리하는 제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기업을 국가가 나서서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재산권에 대한 침해라는 헌법적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홍명수는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키며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의 조건을 만족하는 한 최후 수단으로써 직접적인 분할∙분리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직접적 분할은 역사적으로 그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Standard Oil그룹, AT&T그룹 등은 주식의 교환과 매각을 통해 분할 되었고 독일의 콘쩨른은 다수의 기업으로 분할하고 기존 주주들의 권리는 분할된 개별 기업 중 하나에 집중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도 동족(同族) 지배 청산 시에 지주회사정리위원회에 금전과 국채를 대가로 양도되었다.
총수 일가의 소유집중 분산[3]
           소유집중, 일반집중, 시장집중 중에서 소유집중을 해결함으로써 재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존재한다. 박승룡은 자신의 논문에서 권오승(1992)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소유집중의 해소를 통한 재벌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승계 과정에서의 불법과 탈법을 규제하는 것 이외에 재벌 총수 일가가 가진 지분 자체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소유집중을 해소하는 것이다. 위의 연구결과에서는 현재의 소유주인 총수를 규제하지 않고 상속∙증여 과정에서 고액의 세율로 규제하는 것보다는 현재 일정 기준 이상의 지분 소유자에게 이익배당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여 주식이나 지분의 양도를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방법이 더 적합함을 보이고 있다. 연구에서는 이러한 해결 방안의 위헌성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경제력 분산 방안에서도 언급했듯이 헌법 제23조의 기본권 제한과 사유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 의무에 비추어 보아 소유집중 분산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재벌 집단의 계열사 중 산업연관성이 미약하거나 전무한 기업을 간접적 강제를 통해 정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V. 맺음말
           재벌개혁은 시장경제체제의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건전한 시장경제체제의 정립을 위해 필요하다. 『벌거벗은 재벌님』에서 저자는 사회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사익추구 행위를 철저히 막고 개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재벌개혁의 목적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가 말했고 흔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함을 주장하는데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좀더 나은 상태로 갈 수 있을 때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재벌의 사유재산권을 신성시하고 천부인권적으로 대하는 태도는 이러한 시장경제체제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남게 된다면 우리도 저개발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재벌개혁이 없다면 시장에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진입하지 않아 시장이 도출하는 성과는 점점 나빠질 것이다. 재벌개혁은 순환출자 등을 통한 가공자본이 만들어주는 경영 참호에서 재벌들을 끌어 내어 공정한 경쟁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
           건전한 시장경제체제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유효한 경쟁의 확보는 정부, 특히 경쟁당국 의 중요한 정책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상품시장에 있어서의 개방은 우리 경제에 경쟁의 활력을 불어 넣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효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그 시장에서 독과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던 재벌 기업들의 독과점적 지위를 박탈하고 경제력 집중 정도를 완화시켜 궁극적으로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는 방법이다. 재벌 기업들도 국제 경쟁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더 이상 부당지원 행위 등의 비효율적 경영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됨을 체감하면 좀더 시장경제 원리에 맞는 경영방식을 택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효율적인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면 재벌 자신과 국민경제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동안 재벌개혁 정책들은 재벌문제 해결에 방점이 찍혀있기 보다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강했으며, 정작 재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다는 박상인의 지적은 여태껏 왜 재벌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신하들의 요설이 내용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모순임을 간파하고 굳건한 원칙을 세운 뒤 장기적으로 시행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용감하게 외친 소년처럼 재벌문제와 재벌개혁에 대한 진실을 밀고 나가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재벌개혁은 국민과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재벌에게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길이다.



[1] 박상인, 『벌거벗은 재벌님』, 창해, 2012. p. 44
[2] 홍명수, 『재벌의 경제력집중 규제』, 경인문화사, 2006, pp. 267-294
[3] 박승룡, “재벌의 구조개편에 관한 법적 연구 : 재벌 총수의 지배력 해소 방안을 중심으로”, 1998

2014년 4월 24일 목요일

하얼빈 사진

홍콩 여행기 올리다가 급 제가 대학원 들어가느라 바빠져서 못올리게 된 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여태껏 연재한다는 글 죄다 그렇게 된 거 보면 역시 전 연재하면 안 되나 봅니다 ㅠㅠㅠㅠㅠㅠㅠ 근데 홍콩 여행은 저게 클라이막스이고 뒤는 보실 것 없습니다. 제가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온 쇼핑몰과 백화점과 거리를 이잡듯이 잡고 다닌 얘기 말고는 사실 할 얘기가 별로 없거든요.


여름이 눈앞에 와 있는 이 시점에 몇 년 전에 가본 하얼빈 사진을 여러분께 소개할까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래도 홍콩이나 베이징보다는 많이 안 가는 곳이지요. 전 2010년 1월에 중국에 갔는데 군대 입대를 앞둔 친구들과 함께 갔습니다. 원래 같이 하얼빈에 가자고 하려 했으나 추가 경비가 만만치 않아 친구들은 베이징에서 돌려 보내고 저 혼자 하얼빈으로 향했습니다.

하얼빈에 가려면 만주벌판을 8시간 동안 고속열차를 타고 달려야 합니다. 베이징 역에서 낀 성에는 하얼빈 역에 가면 얼음으로 바뀌고 창밖에는 하얀 설경만이 들어오죠. 간간히 가축 떼가 눈에 띄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후진 디카로 찍은 사진이라 사진이 좋진 않습니다만 출발역이었던 베이징 역의 새벽 풍경입니다. 테러 위협이 있어서 그런지 차표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로 가방검사를 해야 역 안에 들여보내줬습니다.










열차는 "화해호 和諧號"라고 부르는 특급열차였는데 우리의 KTX보다 좋은 것 같았습니다만 화장실이 그 쪼그려 싸는 변기였습니다... 특급열차 1등칸 표를 샀는데 화장실이 그모양이라 매우 실망했죠. 하지만 승무원이 쓰레기도 다 버려주고 도시락도 배달해주고 돈 낸 값은 있었습니다. 당시 차표가 한국 돈으로 편도 7만원 가량 했습니다.






 뭔가 원자력 발전소 같은 곳이군요.












간식으로 먹으려고 산 빵이었는데 중국 현지 롯데마트에서 샀는데 맛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열차 안에는 열차 속도를 상시적으로 보여주는 전광판이 있습니다. 公里는 km입니다. 현재 시속 210km이군요. 300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화해호 외관입니다. 마치 KTX 같죠. 베이징에서 하얼빈 사이에 3개 역 정도 들립니다. 제 기억으로는 석가장, 심양, 장춘 이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만주벌판은 끝도 없습니다. 하얼빈은 만주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하얼빈까지만 해도 고속열차로 8시간이면 만주는 꽤 큰 곳이겠죠.
















































하얼빈 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숙소에 짐을 놓고 나와 제가 달려간 곳은 러시아 음식점이었습니다. 사실 하얼빈에 온 이유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지 못한 아쉬움을 풀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러시아 음식점을 다녔는데 진짜 러시아 맛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에서 한끼에 혼자서 한국 돈으로 만원 넘게 써가면서 호화롭게 먹었습니다. 혼자서 맥주에 메인 디쉬에 디저트까지 먹었습니다. 러시아 음식점이라 러시아 맥주 발찌까도 팔더군요. 러시아와 가까운 곳이라 러시아 관광객도 많았고 점원도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곳이었습니다.
























실외 사진들 질이 하나 같이 좀 떨어지는데 카메라가 구식인 것도 있거니와 밤엔 영하 30도로 떨어집니다. 카메라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장갑을 벗는 순간 손에 감각이 없어지죠. 카메라 배터리는 건전지였는데 30분에 한번씩 바닥나서 배터리를 여러개 사서 주머니에 한가득 넣어 두고 갈아끼우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겨울의 하얼빈은 온 도시가 빙등제를 합니다. 도시 곳곳에 얼음조각이 되어 있고 그 안에 조명을 넣어 빙등을 켜지요. 그리고 중앙대가는 고풍스러운 제정러시아 시대의 건물로 가득 차 있어 밤에는 거리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얼빈이 저기 촌동네 조그만 도시인 것 같지만 인구가 꽤 많은 대도시입니다. 흑룡강성의 성도이기도 하고요. 저 거리에 어지간한 브랜드의 상점은 모두 있었습니다.





하얼빈은 러시아의 문화가 많이 깃든 도시라 그런지 스탈린 공원이 있습니다. 쑹화강 강변에 있는 공원인데 그 주변의 도로 이름은 우의대로입니다. 친구 간의 우의 할 때 그 우의입니다. 중소관계를 아시는 분은 이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제정러시아 시대의 구 시가지 끝에 있는 공원으로 저기 보이는 탑은 홍수극복기념탑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다양한 빙등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영하 30도였습니다... 그래도 용케 잘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었네요.



다음날 아침 호텔 조식에 편육에 김치가 나와 맛있게 먹고 다시 중앙대가로 나갔습니다. 옆의 아치가 중앙대가 초입에 있는 입구입니다. 중앙대가는 제정러시아 시대의 건물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하얼빈은 러시아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러시아의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있죠. 하지만 모스크바 같은 분위기라기 보단 역시 제정러시아 때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옆은 러시아 양식 건축물들을 안내하는 표지판입니다. 사실 하얼빈의 러시아 건축물들은 그대로 보존되기 보다는 상업시설로 활용되면서 간판이 붙고 이래저래 개조 되면서 그 멋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제정러시아 때부터 있던 건물도 아니겠죠. 건물에 붙은 큰 아디다스 간판이나 맥도날드 간판이 도시 미관을 많이 해치고 있었습니다.



























옆에 보이는 탑은 온도계입니다. 그날 현지 기온을 알려주는 온도계가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 필요할 것 같더군요. 기억하기로는 저 때 낮 기온이 영하 20도였습니다. 엄청 추울 것 같지만 바람만 안 불면 다닐만 했습니다. 다만 제가 러시아에서 사온 털모자에 가죽장갑을 끼고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칭칭 감고 돌아다녔습니다. 하얼빈에서 겨울에 패션 챙기다간 다 얼어죽겠더군요. 눈이 녹아 생긴 빙판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사람이고 차고 그냥 얼음이 한겹 덮인 도시 위를 조심스럽게 지나다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 도심은 사람도 많고 상점도 많았습니다. 건물을 좀더 원형 그대로 살리고 페테르부르크처럼 분위기를 냈으면 좋으련만 왕서방의 고장 중국에서 그런걸 기대하긴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러시아에 온 기분을 한껏 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건물 두개 사이를 막아 이어서 지은 백화점입니다. 너무 추워서 잠시 피신해 있었는데 지하엔 한국 슈퍼마켓도 있더군요. 택시기사 아저씨도 하얼빈 공대에 한국 학생도 많고 하얼빈에 전반적으로 한국인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제정러시아 건물들은 보통 파스텔 톤으로 칠해져 있는데 유럽의 다른 도시들하고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달까요.




 그 다음 간 곳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성 소피아 성당이었습니다. 제정러시아 시절 세워진 성당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남아있었으나 종교를 탄압하는 공산당 정책에 의해 안의 이콘과 장식은 모두 뜯겨나가 있었습니다. 성당도 성당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고요. 하지만 그 외관 만큼은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성당 내부에는 하얼빈의 과거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과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 역이 성당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구도심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으로 옮겼고요.












러시아 식민지 당시 거리에 걸린 러시아어 간판들입니다.













하얼빈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는 러시아인 가족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쑹화강변 태양도 공원에 가면 구 러시아 귀족들의 별장이 있습니다.












옛날 성당의 모습입니다.




 
 







 하얼빈 제일 치과 학교라고 되어 있는 간판입니다.












성 소피아 성당 구경을 다 끝내고 역시나 또 다른 러시아 식당에 들렀습니다. 역시 시내에 있는 곳이었는데 드디어 크바스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크바스는 러시아 전통 음료로 러시아 흑빵을 물로 만든 것 같은 맛입니다. 시큼하면서 또 달달하기도 하고 탄산이 들어가 있어 맥주에서 알콜 뺀 듯한 느낌입니다. 2008년 여름 러시아에서 길거리에서 맛있게 사먹었는데 정말 반가웠습니다.






 식당 내부는 꽤 고풍스러웠습니다. 물론 밥값도 고풍스러웠습니다만 여행 왔는데 먹을 건 먹고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또 와장창 시켰습니다.













 빵은 러시아어로 흘롑이라고 하는데 러시아 특유의 흑빵이 있습니다. 약간 발효되어서 시큼털털한 맛이랄까 러시아에서 처음 먹었는데 건강빵이라고 생각하면 먹을 만 했습니다. 빵과 함께 이것 저것 먹었는데 러시아 음식은 향이 세지 않고 간도 많이 안 되어 있어서 대부분 먹을 만 했습니다. 진짜 러시아 본토 음식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요.




































한겨울의 쑹화강은 꽝꽝 업니다. 정말 꽝꽝 얼어서 그 위에 마차와 자동차가 다니고 시민들은 멀리 다리로 돌아서 건너지 않고 그냥 강변에서 강을 건넙니다. 저도 태양도 공원이 있는 섬에 다녀오려고 케이블카를 타고 넘어갔습니다. 근데 케이블카가 너무 이른 시간에 끊겨 강을 걸어서 건널까 생각하니 막막하더군요. 마침 공원을 지키던 공안에게 "건너가는 배편은 없냐"라고 물었습니다. 공안은 "이런 추운 겨울에 강도 다 얼었는데 배는 무슨 배냐"면서 미친놈 보듯이 보더군요. 너무 추워서 머리가 안 돌아간 듯합니다.



이 표지판이 바로 하얼빈의 스탈린 가 표지판입니다. 사실 파리에서도 스탈린그라드 가와 막심 고리끼 가를 보았지만 중국에서 스탈린 가를 보게 되어 뭔가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중소분쟁을 겪고도 그대로 놔둔 것을 보니 신기합니다.











도시 전체가 빙등제를 하지만 빙등제 구역은 따로 있습니다. 공원에 한꺼번에 조각품을 모아놓고 하는데 해마다 주제가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월트 디즈니가 주제더군요. 그래서 온갖 디즈니 공주님들과 만화 캐릭터들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각국의 얼음 조각가들이 조각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얼빈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어 빙등제를 보고 나서 역으로 후다닥 갔습니다. 하얼빈 역으로 가서 침대기차를 타고 밤새 돌아오는 일정이었거든요. 2층 침대가 2개 놓여 있는 구조였는데 위에 굉장히 무거운 중국인이 올라가더니 새벽 3시 쯤에는 자기 핸드폰을 떨어뜨려달라고 저한테 주워달라고 해서 뭔가 도난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이 때부터 침대차의 저주가 시작되어 2년 후에도 오스트리아에서 베니스로 가는 침대차 안에서는 독감이 들어 베니스에서 죽을 뻔 했습니다...

사진을 이래저래 모아서 올려봤는데 영 화질이 안 좋네요. 그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